<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좋은 영화에는 감동이 있다. 영화를 보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며 여운을 만끽한다. 그전에 엔딩은 아주 인상 깊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그 컷은 딱 그 영화의 마침표가 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도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감동과 여운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감동이 있다. 얽힌 인간관계 안에 선과 악의 구도가 형성되지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잔인함과 악랄함이 없다. 칼과 피는 오직 철학을 대변한다. 반면, 현대 영화의 끔찍하고 잔인한 표현들은 영화뿐만 아니라 매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인간의 감정 체계를 파괴하고 뒤흔든다.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은 좋은 영화가 못 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속 배우의 연기는 어설픈 듯 보인다. 일본군과 서양인 포로들의 관계를 그린 내용이기에 언어의 장벽이 있다. 이러한 설정으로 인해 서툰 대사처리에서 오는 심한 괴리감은 모른척할 수도 있다. 주연인 사카모토 류이치와 데이비드 보위는 뛰어난 음악가였지만, 전문 배우로서는 부족함이 많아 보인다. 함께 중요한 배역을 맡은 기타노 다케시 또한 유명한 희극인이었으나 영화로는 첫 출연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오랫동안 준비한 완벽한 언어구사력보다 어설프지만 솔직한 말에서 더 큰 감동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천재적 예술가의 다방면인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이겠지만, 분명 감독의 배우 연출의 힘도 크겠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가끔 덜컥댄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몇몇 작품에서 주제 전달을 위해 실험적인 연출을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은 영화의 가치를 따르는데 버거운 모습도 종종 보인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일본군 하라와 포로 로렌스를 지미집이 롱테이크로 따라간다. 화면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그러나 마치 <쥬라기 공원>의 완벽한 세트장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유명한 음악인 'Merry Christmas Mr.Lawrence'가 흐르자 알 수 없는 영화적 감동이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다. 기묘한 힘. 사카모토 류이치는 자서전 형식의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이 영화에 출연뿐만 아니라 충동적으로 영화 음악을 맡았다고 말한다.
거장의 작품에서는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진심과 솔직함이 느껴진다. 현대 작품들에서 또는 초짜 감독의 작품에서 그러한 면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차 영화의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매력. 그 매력에는 미장센이라는 언어가 존재한다. 지금은 고전적 영화 언어로만 들릴지 모르는 이 단어는 글, 연출, 촬영, 편집, 미술, 음악 등 영화의 모든 요소의 조합이며 작품이 갖는 미학을 총칭한다. 주제가 확실하지 않거나 산만한 이야기, 어수선한 연출은 미장센과 거리가 멀다. 명작에는 미장센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린다.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은 좋은 영화를 보고 나오며 함께 온 사람에게 미장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는 말 그대로 종합 예술이다. 영화제작 과정은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하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영화에 통달해 나갈수록 스토리를 해체하고 이미지에 더욱 집중했다. 영화는 이미지와 소리를 합쳐 언어를 만들어내고 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는 드라마와 달리 많은 말(대사)이 필요치 않다.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의 눈빛과 감정의 교류만으로도 영화는 묵직한 존재감을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차원 다른 세계를 터득한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