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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Mar 04. 2024

스포츠가 가르쳐 주는 것

종종 해외 축구를 본다. 정확히 말하면 해외에서 뛰는 한국선수의 경기를 즐겨본다. 요즘 주말마다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경기를 꼭 챙겨본다. 일주일 기분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스케줄이다. 팀이 승리하는데 손흥민 선수가 큰 공헌을 하는 날이면 경기 하이라이트와 골 장면을 돌려보고 유튜버들이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을 찾아보며 풍요로운 일주일을 보낸다. 거대한 경기장을 꽉 채운 수만 명의 사람들이 방방 뛰고 얼싸안고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자면 먼 곳에 있어도 함께 하는 것만 같아 덩달아 신이 나고 가슴이 웅장해진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다 보면 성인들 사이에 아빠와 함께 온 어린아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축구는 단지 거대 산업을 굴리는 공놀이가 아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구단 자체적으로는 선수들이 불치병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 중인 아이들을 찾아가 사인한 유니폼을 선물하며 좋은 추억을 심어준다.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은 관중석으로 다가가 유니폼을 벗어 아이에게 전달한다. 좋아하는 선수의 유니폼을 받은 아이는 아버지를 붙잡고 방방 뛰며 좋아하거나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이와는 조금은 다르게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도 있다. 다소 과격한 응원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아이는 어른들과 함께 상대 팀 선수에게 욕을 하며 중지를 드는 모습도 보인다. 꿈과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산업의 목적과는 다른 방법으로 축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소란스러운 경기장 군중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소리치고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 또한 스포츠를 즐기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퇴근 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말이다.



두 방식에서 옳고 그름은 없겠다. 단지 그 모습을 보며 스포츠는 아이의 인성 교육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승리에 도취해 과도하게 흥분할 때나, 응원하는 팀의 패배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조절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데에 좋은 교육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답답한 경기력으로 팀이 패배하거나 이기던 상황에서 추가시간에 역전을 당하면 (공감이 안 될 수 있지만) 분노가 치민다. 주먹을 휘두르고 싶고 뭐라도 발로 차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기분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든다. 펍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친구와 침 튀기며 이야기를 나누면 그만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없다. 아니면 빠르게 현실로 돌아와 현재에 집중하면 분노는 또 잊혀지기도 한다. 감정은 한없이 지속되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금세 펄펄 끓다가도 금방 식어버리는 주전자 같거나, 집채만큼 높아졌다가도 다시 잔잔해지는 파도와 같다고 깨닫는다.


패배의 순간도 그렇게 금방 잊혀진다. 다음 주 주말이면 TV 앞에 앉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 시작 휘슬이 불리기만 기다릴 것이다. 패배했던 선수는 더욱 승리를 갈구하는 전사가 되어 경기장에서 투쟁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희생정신을 보며 또 다른 것을 배워나간다. 아이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설명해 주는 것도 좋겠다. 선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며, 그들이 패한 후에 분노와 후회와 좌절을 컨트롤하고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알려줄 수 있다.


출처: fc서울 공식홈페이지


우리나라 K리그 팀인 FC서울에 영국 명문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출신 선수였던 린가드가 입단했다. K리그를 즐겨보지 않고 축구 경기장에서 경기를 본 적은 없지만, 그 소식을 듣고 경기장에서 경기를 직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사례가 계속되며 K리그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남녀노소 더 많은 팬층이 생길 것이다. 아이 있는 가족의 주말 나들이 리스트에 축구 경기장에 가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경기장은 아이들로 북적북적하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스포츠를 즐기는 환경과 팬을 향한 서비스 질은 산업이 목표하는 것보다 항상 더 높아야 한다. 더 앞서 나가야 하고 기대치 이상을 선사하려는 혁신가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실어주는 것만이 인류의 희망이다. 그러함에 있어 스포츠는 거대 산업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 문화의 영역까지도 도달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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