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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Mar 19. 2024

첫사랑에 관하여, 따지고 싶진 않지만

<패스트 라이브즈 Past Lives> (2023)

-> 이토록 섹시한 첫사랑 영화

-> 첫사랑은 실패에서 시작된다

-> 시간과 빛을 아름답게 수놓다

출처: IMDB


*첫사랑의 모호함


영화에서 ‘첫사랑’은 자주 쓰이는 소재다. 이명세 감독은 1993년 작품인 <첫사랑>에서 열아홉 살 대학 새내기인 영신(김혜수)의 첫사랑을 표현했다. 이명세 감독에게 첫사랑은 몽환적인 기억이다. 내밀한 서사보다 희미한 꿈결 같다. 전도연, 이병헌 주연의 1999년 작품인 <내 마음의 풍금>은 열일곱 살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의 첫사랑 이야기이다. 홍연의 첫사랑은 현실에 접착되어 선명하다.


출처: KMDB


영화를 보며 주인공에 감정이입 될 때면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일까?)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던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첫사랑은 기억일까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일까. 아니면 영원한 기분일까. 다만 ‘첫사랑’은 ‘사랑’에 속한 세밀한 장르임은 분명하다. 기억 속으로 들어가 특정 인물을 추적할 수 있으며, 상황을 설정할 수 있다. 그럴수록 왜 꼭 첫사랑을 찾아야만 하지?라는 의문은 점점 커진다. 그 의문의 답은 그때의 ‘나’로 맞춰진다. 그리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 사실과 거짓의 버무림 속에 첫사랑은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의 소재 정도가 되어 버린다.


출처: IMDB


*첫사랑의 완성은 인연의 실패에서부터


<패스트 라이브즈> 또한 첫사랑에 관한 영화다. 어릴 때 나영과 해수는 서로에게서 사랑을 알게 됐다. 하지만 나영의 이민으로 연락이 끊기고, 잊고 산 지 20여 년. 나영과 해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연락이 닿는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가장 순수했던 순간에 두 사람 앞에 찾아온 사랑이 어떻게 숙성되고 변화하는가를 지켜보는 영화다. 남자와 여자가 품은 사랑의 온도 차를 확인하는 영화이며, 각자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있는 ’첫사랑‘과 ’인연‘이라는 단어는 중요하게 작용한다.


출처: IMDB


인(因)이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며, 연(緣)은 그것을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라고 한다. 둘에게 ‘인’은 사랑이고 ‘연’은 시간이다. 20여 년이란 시간은 둘의 간절함과 그리움을 무르익게 한다. 그리고 신체의 성장과 정신의 성숙도 동반한다.


수많은 인연은 스쳐 지나가나 둘에게 얽힌 시간만은 톱니가 맞아 돌아간다. 무엇인지 모를 그때의 기억과 감각과 분위기는 사랑이라는 명사로 집약된다. 이루어질 수 없음의 좌절과 슬픔은 ‘연’의 작용으로 ‘인’은 가장 붉은 온도로 상승한다. 기억은 변형된다. 봄바람을 맡거나, 한여름 개구리울음소리를 듣거나, 홀로 가을 낙엽을 밟으며 깊은 열병을 앓는다. 술 취해 친구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은 ‘첫’+‘사랑’의 이야기는 분주한 포장마차 안에서 완전히 무르익어 달콤 짭짤한 안주가 된다. 그렇게 '첫사랑'이 만들어진다.


출처: IMDB


대학생 해성의 고백에서 직장인이 된 후 해성의 그리움까지 전달된 ‘첫사랑’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남정네들의 속을 살살 긁는다. 이야기가 술을 부른다. 그래서 첫사랑은 꾸며진 각본이자 예능에서 다루는 사연일지도 모른다. 엔딩 시퀀스에서 그 예능 같은 마지막 장이 펼쳐진다. 영화는 끝까지 둘의 감정을 이어 줄 수는 없는 듯하다. 해성과 나영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몇 분은 걸린다던 택시는 몇 초 만에 도착한다. 첫사랑의 전제 조건에 엇갈림은 필수다. 인연이 아님의 증명이 첫사랑 히스토리를 완성한다.


택시 탄 해성은 멈추지 않고 뉴욕을 가로지른다. 끝은 아닐 것이다. 인연은 절대 끊어지지는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술주정처럼 말이다. 아무리 멀어져도 이어져 있기에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만남에는 다른 종류의 기대가 있을 것이고, 실망감이 조금 섞인 설렘이 있을 것이다. 변화는 두렵지만 종종 짜릿한 여정의 일부가 아닐까 깨닫는 순간, 시간에 올라타 멀어져 가던 첫사랑은 저만치 다시 한번 더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출처: IMDB


*의문 포인트> 너무 타이트했던 해성의 핏


영화를 보는 내내 성인이 된 해성의 옷이 너무 꽉 껴 보여 내가 다 불편했다. 오래전 피팅 때 사이즈를 쟀는데 다른 영화가 먼저 들어가서 벌크업을 해버린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인이 된 나영을 찾아갔을 때 해성은 쭈뼛거리는 숫기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성인이 된 나영은 성인으로서의 해성을 만났지만, 해성은 과거의 아이였던 나영을 찾아왔다. 해성에게 첫사랑은 현실보다 과거다. 반면, 나영은 결혼도 하고 미래를 착실히 꿈꾸는 현실적인 모습이다. 과거의 나영을 찾아온 어린 해성의 순수한 마음과 남녀의 차이를 연출하려던 의도가 아니었을까.


출처: IMDB


*매력 포인트> 시간을 섹시하게 다루는 연출


해성(유태오)이 뉴욕에 도착해 호텔 앞에서 비를 맞으며 담배를 태우는 모습은 흡사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남자가 보기에도 섹시한 장면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다 보면 종종 왕가위 감독의 분위기를 느낀다. 시간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아 헤맸던 왕가위처럼, 셀린 송은 시간을 참 섹시하게 다룬다.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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