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단편소설 <타인의 방>
<타인의 방>은 1971년에 발표된 최인호의 단편소설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도 열어주지 않는 문을 막연한 기다림 끝에 제 손으로 연 뒤, 일이 있어 잠깐 떠났다는 아내의 쪽지를 발견한다. 그 뒤 ‘그’는 혼자 집을 거닐며 다른 사물에 대해 의식하고, 고찰하게 되던 중 몸이 굳어간다. 그 뒤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가 새롭게 쪽지를 남기며, 다시 집을 떠난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집 안의 사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면일 것이다. 작가는 사물들이 각 자의 생명력을 발산하는 것처럼 표현한다. 그리고 그 표현들은 음침하기도, 노골적이기도 하며 신기함과 찝찝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마치 밤에 보이지 않는 모기 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스쳐 지나가듯 잠을 이루기 힘들게 만드 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독자들에게 준다. 그저 티스푼이나 거울, 전구 소켓일지도 모르는 것을 하나의 자아로 표현 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방에 들어가 있는 어느 누구든, 손쉽게 정신이상이 오거나 엄청난 깨달음 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마치 영화 <샤이닝>에서 주인공 잭 니콜슨이 한 건물 안에서 생활 하면서 점점 변화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비록 소설의 느낌은 전혀 다르지만 ‘한 사람이 외로움을 극 도로 느끼면 주변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라는 질문의 답으로 비슷한 결의 답을 내놓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러한 느낌은 혼자이기에 체감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기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리는 것 또한 적막이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모순적이게도 시끄럽고 정신없는 사물들의 존재 속에서 ‘그’를 감싸고 있는 적막 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순간에도 조용한 곳에 있다면 마치 벽 너머로 어떤 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예감이 들 기도 한다. 최인호의 살아있는 표현들이 만들어내는 공감, 혹은 교감일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고독은 통증인지 아닌지로 구분된다. 외로움은 통증이다. 자신이 혼자 있기를 원하지 않음에도 이뤄 지고, 그로 인해 자신이 고통받는 것이 외로움이다. ‘그’의 집은 아파트다. 대한민국의 좁은 땅에서 5000만 명의 사 람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아파트가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되었다. 사람이 지하에 들어가서 평 생을 살아갈 수는 없기에, 우리는 땅으로부터 더 높아지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같은 층에서 점점 각자 의 다른 층으로 옮겨갔다. 이제 창문을 통해 코 앞에 있는 풍경을 땅의 높이에서 바라보거나, 이웃집에 자동차가 들 어오는지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또한 이제 자신의 층으로 힘겹게 올라 그곳에서 땅의 온기와 멀어진 상태로 추운 밤을 보내야 한다. 이러한 공간의 구분으로부터 현대의 외로움을 시작된다.
‘그’가 힘겹게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견디기 힘들어진 외로움을 집 내부의 사람으로부터 해소하고 싶 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게 닫혀 있는 문에 더욱 강하게 고독을 떨치길 갈구한다. 이웃의 시선이나 자신의 평판까지 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외로움의 공포는 강하다. 따뜻한 음식과 깔끔한 집이 아내의 부재로부터 나온다고 해서 이 소설을 단순히 가부장적인 주인공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아내의 존재로부터 무 의식처럼 느껴졌던 외로움의 퇴치였다. 이제 그 퇴치법을 찾지 못한 인간이 느낄 두려움이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가 집 안에서 아내가 남긴 것 중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것은 거울에 붙어있는 아내가 씹던 껌뿐이다. 그 껌을 자신의 입에 넣으며 웃음을 지었던 것은 잠시나마 다른 존재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로움을 벗어날 때 즈 음 집 안의 사물들이 움직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집 안의 수많은 물건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상황에서 ‘그’도 나 체로 돌아다니는 것은 편안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다른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떠올리고, 자신도 그 와 다르지 않음을 인식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일 것이다.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게슈탈트 붕괴 현상’이라고 부른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아 내조차 없는 집 안에서 ‘그’가 느끼는 이상한 분위기도 이 현상과 비슷하다고 보인다. 외로움이 만든 어색함과 공포 가 자신의 집을 어색하게 만들고, 집 안의 모든 사물들이 제각기 살아 숨 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살아난 모 든 것들과 맞닿은 뒤 ‘그’는 분명 공포를 덜어놓았을 것이다. 외로움 또한 조금은 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의 몸이 굳었다가 두려움을 내려놓았을 때, 환생한 듯하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직설적으로 보인다. ‘나’ 라는 1인칭에서 ‘어떠한 것’이라는 3인칭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마침내 아내가 좋아하는 하나의 물 건이 되었을 때, 소설의 제목인 <타인의 방>의 의미가 완성된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특징을 드러내 지 않고, 오직 ‘그’라고 가장 간결한 표현을 붙인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인의 방>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들을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공간, 관계, 자유 등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점점 더 작아지거 나 좁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영역 또한 좁아지며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에 더 자주 서게 되고, 그것은 외로움을 더 강화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시기였다고 한들 ‘그’가 느끼는 외로움은 달랠 수 없 었을 것이다. 당장 자신이 소유한 공간마저도 공백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먼 거리의 정체도 모를 누군가는 오히려 아쉬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71년도에 나온 것을 나는 다행으로 여긴다. 하지만 반대로 인터넷이 발달했음에도 느껴지는 소외와 고독을 정말 잘 표현해내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도 내심 하게 된다.
소설의 끝에 결국 ‘그’마저도 아내에게는 다락에 옮겨지는 물건으로 취급된다. 외로움은 사람에게서 가장 크게 느껴지지만 더 크게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도구로 취급되는 현대 사회에서 ‘물건’이 된다는 것은 이미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 소설은 비록 후련한 해결이나 답은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인의 소외를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자체로 공감을 하게 만든다.
<타인의 방>은 2021년 현재 발표된 지 50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70년대에 쓰인 많은 작품들에서 흔히 느껴지는 현재와의 미묘한 불일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50년의 세월이 흘러도 현대인의 외로움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특히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소설을 넘어섰을지도 모른다. 이 미 자신의 하루를 끝마치는 퇴근의 과정에서 경험했던 일일 수도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현실감과 표현의 생동감은 강력하게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