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구애>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 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라는 명언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말이 <저녁의 구애>를 정확하게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겪은 수많은 선택과 그로 인한 후회는 놓침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놓침은 왜 일어날까?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 아마 그것이 최선이 아니라고, 최고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와 최선의 기준은 항상 변한다. 어제의 후회가 더 이상 오늘의 후회 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선택을 이어간다.
소설은 오래전 은인의 장례 화환 주문을 받는 ‘김’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주문을 수락한 이후, 그 화환은 더 이상 파는 물건이 아닌 조의를 담아 보내는 ‘김’의 물건이 되었다. 여자와의 약속을 미뤄왔음에도 또다시 미룰 수밖에 없 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그렇게 사랑과 잠시 멀어지고 죽음과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380km나 떨어진 곳에 도착한 뒤, ‘김’은 화환을 전달하기도 전에 이 도시가 죽음을 대하는 법을 곳곳에서 떠올린다. 그 뒤 어른의 죽음과 불타는 트럭이 코 앞에 닿은 뒤에야 비로소 여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마무리된다. 소설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삶의 과정을 화환을 가지고 달려가는 ‘김’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의 선택들을 바라보며 여운을 남긴다.
죽음이 주는 순간의 차분함과 고요함은 당사자에게만 해당된다. 그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수많은 감정 이 휘몰아치는 상태에 빠진다. 어른의 죽음을 기다리는 ‘김’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문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예상하 지 못했던 감정의 변화를 겪게 되면서 오래전 인연을 통해 오래된 기억까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여자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떠올리는 것은 이전까지의 ‘김’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기회였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은 뜬금없게도 느껴지는 ‘김’의 후회는 정신없게 보이지만 그래서 더 진심처럼 느껴진다. 내용의 비중은 죽음에 대응 하는 사람들과 ‘김’의 사랑에 대한 태도가 절반씩 보인다. 초반에는 모든 것이 차갑게 느껴진다. 마치 후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에는 해가 지고 있음에도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변화한다. 본의 아니게 여 자는 웃고, 담배의 끝은 불이 붙어 열을 내고 있다. 그렇게 소설의 온도가 변하며 ‘김’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 갈지 암시한다.
흔히 말하는 ‘주마등이 스치는 경험’은 아주 선명하게 이뤄진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은 가까스로 벗어났다 고 해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김’에게 불타는 트럭과 장례식장의 간판 불빛은 주마등이었다. 그리고 그 너무나도 선명하게 기억될 순간에 그의 최고의 선택은 사랑을 표현하는 일이었다. 어떤 후회도 고민도 없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던 ‘김’의 무의식이 내린 선택이었다. 그의 선택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선택과 후회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게 만듦과 동시에 잠시 멈춰 지금까지의 선택을 죽음 전에 먼저 돌이켜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