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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하 Nov 29. 2022

장례식장과 납골당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촬영을 한다는 것.

최근 촬영을 위해 장례식장과 납골당을 연속으로 다녀왔다. 차를 타고 먼 거리를 이동하여 한적한 장소에 도착하면 처음에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정신없게 촬영 시작 준비를 한다. 하지만 준비가 모두 끝나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 촬영에 집중을 시작할 때에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장례식장에서는 실제로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영정사진과 그 장례식장의 문 앞에 놓인 많은 화환들, 그 속에서 슬픔에 깊게 빠져 눈물을 한없이 흘린 후 퉁퉁 부은 얼굴의 어른들과 그저 밖에 나와 신난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들. 납골당에서는 주변의 수많은 유골함들과 그 주변에 남겨진 가족들의 못다 한 말들, 잠시라도 죽은 이가 느끼길 바라는 형형색색의 꽃들.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에야 내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마이크를 들고 헤드셋을 쓰는 순간, 다른 장소들과 다르게 시작부터 조용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미 조용해서 다른 소음들을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추모 공원에 와 있는 다른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 안에 눈물과 그 눈물을 바라보는 영혼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그 모든 것들이 헤드셋을 통해 들리지 않는 것이 때로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촬영에서는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실제로 장례가 이뤄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슬픔 옆에서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나의 일만을 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역이었다. 옆 옆의 방에서 가족들의 슬픈 소리와 그럼에도 때때로 들리는 희미한 웃음소리들을 들으며, 그들에게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그 자체로 입을 통해 나온 목소리만큼, 혹은 그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슬픔을 방해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태연한 척했지만, 다른 스태프들이 옆 방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나를 쳐다보는 순간 내가 그들이 조용히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납골당 촬영은 장례식장보다도 더 횟수가 많았기 때문에 다행히도 다른 이의 슬픔을 나의 업무에 대입하여 스스로를 잔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납골당은 누군가의 슬픔이 끊임없이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에 촬영을 위해 만들어놓은 한 칸의 공간을 넘어 주변의 이미 떠난 이들의 공간을 볼 때마다 생각에 잠긴다. 특히 가끔 보이는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였던 이들을 보는 순간은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한 칸 한 칸의 작은 공간 속에 너무나도 많은 사연들이 담겨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다른 이의 떠남을 내가 모두 함께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같은 장소에 있었을 때만큼은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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