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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하 Mar 11. 2023

당신의 보물 1호는 무엇인가요?

웹사이트의 계정을 새로 만들 때 비밀번호를 찾는 질문을 정하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대형 IT기업의 계정 하나로 돌려 막기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그런 질문을 설정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질문을 고를 때 내가 항상 고르는 것은 ‘당신의 보물 1호는 무엇입니까?’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답은 항상 ‘돈’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그때조차 보물 1호를 돈으로 지정했던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도 돈은 참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진짜 보물 1호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이에 따라 항상 바뀌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나의 보물 1호는 호랑이 애착인형이었다. 몸의 솜이 다 빠져 베개에 들어가는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채워진 그 인형은 나와 함께 잠자는 더할 나위 없는 친구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호랑이 인형의 생김새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나의 첫 보물 1호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도 아껴왔던 인형이었음에도 그 인형이 사라진 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토이스토리의 앤디처럼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심 때문일까? 이제 와서야 그 인형의 행방이 다시 궁금해진다. 그렇게 나의 호랑이 인형은 보물 취소를 당해버렸다. 


나의 두 번째 보물 1호는 얇은 노트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리포터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본 나는 판타지 소설을 쓰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게 되었다. 명탐정 코난이라는 만화와 해리포터의 이름을 합쳐서 이상하지만 외국 느낌은 남아있던 기시감 가득했던 그 이름은 지금 떠올려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새로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절 덩어리의 그 글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소중했는지 나는 가족들조차 보지 못하도록 컴퓨터 옆 책 사이에 잘 끼워놓았다. 스스로도 그 글이 창피했기 때문에 숨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소중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직은 보여줄 때가 아니라서 숨긴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노트를 펼칠 때만큼은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스마트폰 시대가 오고, 집에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손글씨가 담긴 노트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숨겨둔 그 책꽂이에 여전히 꽂혀있을 것이다. 조만간 본가에 가게 되면 그 노트를 찾아보고 싶다. 오글거림만큼 남아있는 행복을 다시 꺼내보고 싶다.


더 나이가 들어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내가 처음으로 가지게 된 비싼 전자제품들이 보물 1호의 자리를 차지했다. 중학생 때 처음 가지게 된 핸드폰, 고등학교 2학년에 영상 제작자를 장래희망으로 결정하며 구입했던 맥북까지 높은 가격과 동시에 나의 삶에서 가장 많은 사용을 당했던 물품들이었다. 특히 맥북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아주 중요한 도구였기에 나의 보물 1호 선정은 꽤나 가치의 크기를 제대로 산정하여 정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된 후부터 나는 더 이상 보물 1호는 선정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런 것이 가치가 없어졌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너무 많은 보물들을 가지게 되어서 그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이 조금씩 늘어왔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자신의 보물을 정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조차 여유가 없어 어려운 어른들도 많다. 그런 어른들도 어렸을 때에는 참 작은 것들조차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소중히 여겼던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사라지고 버리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보물이 놓일 자리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자신의 보물들을 각자 떠올려보며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장난감 친구들과의 이별에도 고마웠다고 말하던 앤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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