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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Aug 13. 2019

양말 고집

저는 20대 초반에는 분명히 패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급여는 대부분 신발과 옷을 사는 데에 사용했지요.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옷을 샀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패션피플의 세계에서는

멀어졌지요.(아.. 아.. 과거의 멋 부림이여..)

나에게 어울리는 멋진 옷을 찾는 일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사실은 이미 많은 분들께서 느끼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는 서서히 옷과 신발 구매를 줄여나갔고 동시에 패션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갔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신상 제품에 대한 소유욕에서 해방되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30대를 향해 달리던 중 한 가지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페이크 삭스'입니다.

평소 양말에 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독특한 디자인이나, 컬러 양말은 착용 금지 품목이었지요.

언제나 목이 긴 흰색 양말이었습니다. 그 외의 양말을 착용하게 되면 큰일이 날것처럼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예의의 문제로 검은색 양말을 착용하는 일도 가끔 있었지만 그런 일을 제외하고는 절대 목이 긴 흰색 양말을 고집했습니다. 페이크 삭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패션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져 가고 편리함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체질의 변화인지 기후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겨울에는 추위를, 여름에는 더위에 점점 약해지더군요.

겨울은 늘 착용해 오던 양말로 문제가 없었지만 여름에는 새로운 대책이 필요했습니다.

발목이 낮은 신발을 주로 착용하다 보니 목이 긴 양말은 어째 모양새가 양말에 샌들과 같은 모습이 되더군요.

언젠가는 그런 것 마저 멋이 되어서 허용이 되는 때가 있었다는 것까지는 기억이 납니다만

역시 이제는 최신의 멋을 이해하기에는 늦은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어가자면 페이크 삭스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곧바로 받아들여서 착용하지는 않았습니다. 뒤꿈치와 발끝에 간신히 걸려 발등은 시원하게 드러낸 채 발바닥이나 겨우 가리는, 

'요망한 발 가리개' 같은 존재로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저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은 페이크 삭스의 편리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을 고집스럽게 페이크 삭스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저는 점차 더워지는 여름에 지쳐 양말은 물론 전반적인 스타일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몸에 달라붙지 않으며 통풍이 잘 되는 그러면서 매우 편안함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페이크 삭스는 이제 피해 갈 수 없는 협의점이 되었습니다. 

처음 페이크 삭스를 착용했을 때의 그 굴욕적인 기분은 대부분 공감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그 당시 페이크 삭스를 신고 있는 저를, 특히 발을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크흑, 결국 내가 이런 요망한 양말을 신게 되다니.." 하며 굴욕의 여름을 보내곤 했지요.

그런 굴욕감은 페이크 삭스의 편리함과 멋 내기에 유용함으로 잊혀갔습니다.

발목이 낮은 신발을 신었을 때 양말이 보이지 않고 맨살의 발목이 보이는 부분은 과거 패션피플의 피가 

잠시나마 끓어오르게 할 만큼 만족스러움 안겨주었지요.

그렇게 오랜 시간 페이크 삭스는 저의 여름과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냉면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하던 날입니다.

그곳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이었지요.

아무 생각 없이 신발을 벗고 들어서서 눈에 들어오는 저의 발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그림. 홍슬기

"역시 요망한 모습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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