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슬기 Dec 11. 2019

빗 속에서

잠들기 전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출근하는 길도 즐겁다. 

기분이 좋아져서 주말에 사두었던 새 정장을 입었다. 비가 내리는 줄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입고 싶었다. 

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동네 들개는 빵집에서 쳐놓은 어닝 아래에서 얌전히 비를 피하고 있었다.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왔을 뿐인데 쏟아지는 비 덕분에 새 정장 바지는 이미 허벅지까지 젖었지만 상관없다. 

이렇게 비에 옷을 적셔보는 일도 오랜만이다. 

나는 비가 내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비를 맞는 것도 좋아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비가 내리면 쉬는 시간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비를 실컷 맞고 돌아와 비에 젖은 채로 수업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학년이 높아지면서 주위 분위기를 의식해 그만두게 되었다.


 회사 사무실에 도착하니 아직 도착하지 못 한 직원들이 많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을 켜고 시선을 사무실 입구에 두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특별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특별한 날을 함께 느끼고 공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료들의 흠뻑 젖은 재킷과 구두, 머리카락 그리고 물기를 전부 털어내지 못한 우산을 보고 있으면 

동료들과 특별한 날을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좋은 기분이다. 

물론 그들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비 내리는 날의 분위기에 취해 어느새 혼자 나른해졌다. 

출근은 했지만 업무 시작 시간은 20분 정도 남았다. 

나는 의자와 하나가 되듯이 몸을 깊게 묻고 잠시 눈을 감았다. 

손에는 18분 후에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놓은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꿈을 꾸었는데 갈색 개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장소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빵집의 어닝 아래였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꿈속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동네에는 회사로 출근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한적했다. 

그건 그렇고 네 발로 걷는다는 일은 새로웠다. 

개가 되었으니 우산을 쓸 수도 없어서 비를 맞으며 익히 알고 있는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비를 한 껏 맞고 다니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릴 때처럼 비를 맞으며 마음껏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잔디와 각종 풀과 나무로 꾸며진 공원으로 갔다. 

빗줄기는 여전히 만족스럽도록 굵었고 나의 몸을 뒤덮은 짧은 갈색 털은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었다. 

넓은 잔디밭을 네 발로 달렸고, 높게 자란 풀 숲에 몸을 자유롭게 던졌다. 

흠뻑 젖은 갈색 털이 더 이상 빗물을 머금을 수 없게 되면 

익숙하게도 몸을 털어 다시 빗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했다. 

동네에 매일 보던 갈색 들개가 되었다는 것에 놀라기보다는 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달리는 

즐거움에 정신을 잃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내가 비를 맞는 일에 이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꿈인 것도 잊을 뻔했다. 

보통 꿈은 자연스럽게 깨어나기 마련이다. 

스스로 이제 꿈에서 깨어나야겠다고 의식할 수 있는 종류의 꿈이다. 손에 쥐고 있었던 핸드폰은 아직 알람이 울리지 않고 있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꿈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어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그것은 한창 잔디밭을 뛰면서도 현실 속에서 알람이 울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갈색 개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나는 꿈속 갈색 들개의 모습인 채로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핸드폰 알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나는 덜컥 겁이 나서 눈물이 났지만 굵은 빗줄기에 눈물의 온도도 느끼기도 이전에 씻겨 내려가버렸다. 

갈색 털은 흠뻑 젖어서 내 몸에 바짝 붙어버렸고, 잔디밭을 달리는 것도 어느새 멈춰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 몸을 두들기고 있는 빗줄기 속에서 

내가 앞으로도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할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다.


작가의 이전글 옷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