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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Feb 21. 2020

너에게 난

길을 걷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고른다거나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들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하곤 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죠.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만의 엉터리 통계학이 터져 나오곤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초면인 사람들의 성향을 지례 짐작해버리는 일이에요. 

이때에는 크게 얼굴의 특징, 헤어스타일, 패션 스타일, 걸음걸이 정도로 판단합니다.(꽤나 그럴싸하게 나열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엉터리입니다) 눈이 작고 날카로우며 광대가 크게 발달되어있는 인상의 사람을 보고는 

"눈치가 빠르며 고집이 상당히 세겠구나"  합니다. 

그리고 노랗게 탈색을 한 남성이 상체 발달형의 체형에 한 때 고등학생들이 겨울에 즐겨 입던 등산 브랜드의 

고가 패딩을(무려 헤어 컬러와 맞춘 노란색입니다 여러분!) 입고 있습니다. 

바지는 상체에 비해 현저히 볼륨감이 줄어들어 있지만 그것을 완화하기 위해 타이트한 면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어째서인지 발만큼은 추위를 타지 않는지 발목 양말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습니다. 

이런 분과 마주치면 생각하지요. "겉보기와는 다르게 마음이 여리고 의리가 있으며 생각보다 이성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다"라고요. 아주 엉터리입니다. 

저 스스로도 "굉장히 쓸데없는 판단을 빨리도 내리는군" 하고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느샌가 습관이 들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작동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래서야 초면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좋아지고 미워지고 혼자 무의미한 곳에 에너지를 쓰는 것 같아서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자주 가던 동네 카페에서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섰는데 카페 근무자의 얼굴을 보고 결국 시작해 버렸습니다.(일단 카페 근무자의 생김새에 대해 쓰는 것은 넘어가죠 어차피 엉터리이니까) 

"아.. 굉장히 심술궂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스타일이겠군"(역시 엉터리) 

주문을 하고 카페 근무자는 음료를 일회용 컵 또는 머그컵에 담길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머그컵. 

카페 근무자는 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일회용 잔으로 하셨다가 머그컵으로 바꾸셔도 괜찮으니까 일회용 잔으로 하세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일단은 일회용 잔이 아닌 머그컵으로 부탁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면서 골똘히 생각을 해봤지만 머그컵을 원했는데 굳이 일회용 잔을 권하는 

근무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제가 이제까지 습관처럼 해오던 엉터리 통계학. 

카페 근무자 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용했다라면... 이어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는 외침을 듣고 

카운터로 다가갔습니다. 저는 머그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제 얼굴이 음료에 비추어 보이는 게 겁이 나서 말이죠. 

그림. 홍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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