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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Nov 12. 2020

고양이 손님 1

고양이와 함께 지낸 날이 꽤 길었다. 지금은 집에서 고양이가 지냈던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렇게 집안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있었다면 집 밖에 사는 고양이들은 여전히 많다. 

그중에 눈에 띄었던 잘 익은 감귤처럼 이쁜 털색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 녀석을 감귤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감귤이가 암컷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갑자기 자신의 새끼들을 셋씩이나 우리 집 마당으로 들이밀고 와서는 

육아의 터전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집에는 함께 살던 고양이가 먹던 사료가 꽤 남아있었다. 

비워진 사료그릇과 늘 잠자리에 들던 쿠션만 보아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던 차에 나에게는 감귤이와 

그의 새끼들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나는 당장 빈그릇에 함께 살던 고양이의 사료와 물그릇을 준비해 마당에 두었다. 

동물이 살아가기 편안한 환경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든 이런 도심에서 새끼를 셋씩이나 달고 다니는 일이 얼마나 힘들까. 새끼들은 부들부들 푸딩처럼 흔들흔들하는 모습으로 연신 마당을 뛰어다니고 지들끼리 뒹굴었다. 그러다 내가 꺼내 놓은 사료와 물을 발견하고는 달려들어 코를 박고 허겁지겁 사료와 물을 들이켰다. 

뿌듯하면서도 가슴이 아파왔다. 

지금같이 평화롭게 지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도심에서 살면서 지겹도록 돌아다닌다.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서 이기 도하지만 녀석들은 타고난 호기심과 경계심 때문에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녀석들과 마주하는 모든 사람과 환경은 지금의 나처럼 친절하지만은 않다.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감귤이의 새끼들을 보고 있으니 자꾸만 가슴 아픈 일만 상상하게 되어서 

쳐다보는 일을 그만두었다.

 

문을 닫고 들어와서 보니 남아있는 사료로는 감귤이와 새끼들을 매일 먹이기에는 양이 부족해 보였다. 

곧바로 대용량 고양이 사료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이틀 뒤 현관문 앞에는 군대에서나 보았던 커다란 쌀자루만 한 고양이 사료가 말 그대로 서있었다.(굉장한 크기였다) 사료의 입구를 개봉하니 코를 찌르는 사료 냄새가 사료의 품질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분명 좋은 사료를 샀을 텐데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나도 당장에 아침을 스팸과 계란 프라이로 먹는 지경이다. 

감귤이나 새끼들이 트집을 잡은 일도 없는데도 나는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특유의 발바닥 생김새로 발자국 소리가 나질 않는다. 밥 먹는 소리도 아주 작다. 

마당에 사료를 한가득 퍼담아 두고 잠시 후에 나와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빈그릇이다. 

감귤이와 새끼들도 마당에 멀뚱히 앉아 언제 사료그릇을 채워 놓은 적이나 있었느냐 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유쾌한 녀석들이다. 함께 사는 고양이가 사라진 빈자리가 조금은 채워지면서도 가슴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길한 상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빈 그릇에 사료를 가득 채워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의 아침 일과도 감귤이와 새끼들이 먹을 사료와 깨끗한 물을 채워놓는 일로 시작됐다. 

가득 채워놓은 사료그릇을 다녀간 기척도 없이 비워 놓으면 먹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어도 기분은 좋았다. 

그렇게 감귤이네 가족과 나는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함께 사는 모양이 되었다. 

새끼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빨리 커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어느 날 아침 감귤이네 가족이 먹을 사료를 챙겨주고 방에 앉아 뉴스를 보던 중 마당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와 

고양이들이 싸울 때 내지르는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그림. 홍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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