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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리와인드 Sep 21. 2019

미쓰 홍당무, 그녀는 왜 자꾸만 ‘삽질’하는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살펴 본 양미숙의 서사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주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쓰 홍당무' 스틸컷. (주)모호필름


틈만 나면 빨개지는 양 볼에 정신없이 풀어 헤쳐진 머리, 회색 옷의 단벌 신사 미쓰 홍당무. 바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안면 홍조증’으로 피부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전교에서 가장 인기 없는 교사’ 양미숙 양이다. 그녀는 같은 학교 선생님이자 학창 시절 자신의 담임이었던 서 선생님과 4년째 낭만적이고 은밀한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만 양미숙 양 혼자서만 하는 연애라는 게 문제. 그녀에게 서 선생님이 중학생 딸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들이 들으면 경악해 마지못할 그녀의 비밀은 오직 단 한 명, 미숙의 피부과 주치의 박 선생님만이 알고 있다. 안면 홍조증만 고치면 될 피부과 의사가 왜 남의 집 불편한 속사정까지 알고 있어야 하나 싶지만, 그는 그래도 환자라고 나름 성심성의껏 미숙의 고민을 들어준다. 물론 이마저도 미숙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양 양. 그녀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건, 그녀는 이상하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것도,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서 선생님을 무턱대고 사랑하는 것도, 그런데도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도 말이다. 그렇다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새빨개진 얼굴로 날카로운 말들을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그녀니까.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그녀의 삽질이다. 영화 초중반, 그녀는 서 선생님에게 전화로 자신을 데리러 오라며 삽질을 일삼는 것으로 모자라, 진짜 삽으로 구덩이를 판다. 그것도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서 아주 열정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보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다소 괴상해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았다. 먼저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겠다.


  그 전에, 미숙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서 선생님에게 술에 취한 척 전화를 건다. 그녀는 술에 취하지 않았다. 다만 서 선생님이 술에 취한 자신을 집에 데려다주길 바랄 뿐이다. 어디냐는 서 선생님의 질문에 ‘재재 재작년’에 회식했던 고깃집이라고 대답하는 미숙. 무려 4년 전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를 데리러 온 건 바로 이유리 선생이었다. 이 선생은 아주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전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생’이다. 그러나 미숙과 같은 과목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과목이 하필이면 인기 없는 러시아어라는 불행으로, 그녀는 미숙을 고등학교 러시아어 교사에서 중학교 영어 교사로 강등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덕분에 미숙은 팔자에도 없는 새벽 영어 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덤으로 서 선생님과 이 선생이 부적절한 연인 관계라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접하게 된다. 사랑하는 서 선생님과 이 선생을 일단 떼어놓고 싶은 미숙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근데 남자들은 모든 게 그냥이야. 그냥. 아무 이유가 없어.’




  그러나 영화 초반, 그녀는 서 선생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고. '너 왜 그랬어?'라고 질문할 때 ‘몰라. 그냥 한 건데?’라고 대답하는 건 그 행동을 생각 없이 했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생각 없이 대답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의 삽질에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미숙 자신조차도 그 원인을 제대로 모를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 프로이트식으로 표현하자면 무의식의 영역 그 어딘가에 억압된 감정들로부터 기인한 그 원인 말이다. 그러니까, 서 선생님이 그녀에게 ‘교무회의 때 졸지 말라’는 내용의 사랑스러운 특수문자로 치장된 문자를 보낸 것도, 술에 취해 그녀와 하룻밤을 함께한 것도, 미숙이 그토록 집착하는 4년 전 티코 안에서의 사건도 전부 ‘그냥’은 아닌 것이다. 물론 서 선생님은 특수문자 자동 완성 기능으로 인한 사고였고, 술김에 저지른 실수였으며, 자신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가벼운 스킨십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무의식의 영역 속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는 ‘술’에 취해 이성적 통제가 끊어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미숙의 어린 시절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존재한다바로 아버지의 부재.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무의식’이라는 창고를 형성한다. 이 무의식 창고는 차마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과 공포, 그리고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심리적 고난과 상처 같은 것들로 가득하다. 사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올바른 유년기를 보낸 대부분의 사람은 이 모든 것들을 잊은 채 잘 살아가지만, 미숙처럼 아버지라는 존재의 결핍으로 인해 이를 잘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성인이 되어 이상한 패턴을 보이게 된다. 예를 들면, ‘삽질’ 같은 것들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는 그녀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는 왕따를 당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학생들에게 멸시를 받았으며, 여기에 이 선생을 향한 지속적인 열등감까지. 이는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며 영화 내내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모두가 없는 사람 취급하던 때 유일하게 관심을 주었던 미숙의 담임선생님이자 그녀만의 연인, 서 선생님만 빼고.


  미숙은 당연히 삽질의 근본적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너무 꼭꼭 숨겨와 미처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무의식 창고에 그 원인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 선생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말은 ‘뻥이었다’며 자신도 모르게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미숙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숙에게 서 선생님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유년기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여자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이미 결혼을 했거나 또는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로, 그녀는 서 선생님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리고 비록 술에 취해서지만, 프로이트에 따르면 술에 취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 진짜 나의 모습이므로, 이 또한 진심이었을 서 선생님과 꿈에 그리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서 선생님 가족과 이 선생까지, 모든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이들의 사자 대면이 시작된다. 미숙에게 주어진 길은 단 두 개뿐이다. 사랑하는 서 선생님을 가지고 가정 파괴범이 되느냐, 아니면 모든 걸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시작하느냐. 그녀는 십 분의 치열한 고민 끝에, 사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지만, 후자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미숙은 서 선생님을 4년간 좋아했다. 그냥 좋아한 것도 아니고, 아주 열렬히 사랑했다. 재재 재작년 회식 때 고깃집에서, 비록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본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서 선생님의 딸 종희가 ‘그게 다냐?’라고 물었을 만큼 별거 아닌 거로. 그러나 미숙에게 ‘그냥’인 건 없다. 다시 말해, 이는 서 선생님의 무의식 창고가 이성적 통제가 미치지 않는 영역인 술을 통해 발현된 것이므로, 그녀 혼자만의 연애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숙은 이 4년간의 대서사시를 단 십 분 만에 종료한다. 심지어 서 선생님이 그녀와의 하룻밤을 기분이 ‘나빴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행복한 결말도 아닌 것 같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미숙에게는, 아주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서 선생님을 한 번 가졌기에. 이제 서 선생님은 미숙에게 더는 흥미롭지도, 절대적이지도 않은 존재다. 이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미숙이 오랜 시간 내면 깊숙이 지니고 있던 억압된 것들이 해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숙은 다른 상대를 찾는다. 바로 영화 초반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던, 그런 그녀가 너무 귀찮아 아무 기별 없이 병원을 이전해버린, 피부과 박 선생님 말이다.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미숙과 종희는 전국 곳곳을 수소문한 끝에 그를 기어코 찾아낸다. 그리고 질문한다. ‘혹시 결혼하셨어요?’ 더는 그녀가 삽질하지 않길 바라면서, 이번만큼은 꼭 성공하길 빌어야겠다.


* 본 글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를 해석한 비평문입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글 / 씨네리와인드 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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