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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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일이 없는 유령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왔던 길을 반대로 걷는다.”
2019년 8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속 대사이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매일 같은 삶을 살아가던 '혜정'이 의문의 사고로 유령이 된 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따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유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 부천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고, 필자 역시 개봉을 기다렸었던 작품이다.
- 소외된 세 여성의 삶
영화는 소외되고 고립되어 살아가는 세 여성의 삶을 그린다. 먼저 '혜정'은 공장에서 일하며 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 '민성'의 고백에도 연애 같은 거 잘할 자신 없다며 거절하고, 같이 사는 룸메이트들과도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낸다. 가족들과도 성인이 되자마자 연을 끊었다. 반복되는 삶 속,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혜정은 갑작스럽게 유령이 되어 일어나게 되는데, 주변에는 그녀를 도와줄 이 하나 없다.
또 다른 여성 '효정'은 가난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잘 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다가 신용불량자 신세에 처했고, 불어나버린 빚을 해결하지 못해 신체 포기 각서까지 쓰게 된다. 자신의 엄마처럼 아무 잘못 없이 죽기 싫었던 효정은 각서를 받아 간 사채업자 '광식'을 찾아가 살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광식의 딸 '수향'은 할머니와 아버지와 살고 있는 어린아이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연락을 잘 받지 않고, 유일한 놀이 대상은 스마트폰뿐이다. 수향은 버려진 집에 들어가 놀거나 홀로 위험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등 방치된 채 자라고 있다.
이들을 통해 영화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동떨어져 쓸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 유령이 된 사람들
영화 속에서 유령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사전적 의미대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나타내는 '유령', 다른 하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인물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유령'.
유령처럼 살아가다 진짜로 유령이 되어버린 혜정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잊힌 채 유령처럼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점점 존재가 지워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들은 시끄럽고 번쩍번쩍한 도심을 지나 외각에 자리를 잡았고, 비슷비슷한 하루를 버텨내고 있으며, 각자 다른 이유로 고통받는다.
어쩌면 존재도 몰랐을 이들의 삶을 영화는 '유령'이라는 대상을 통해 조명한다. 또한 외로웠을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함께 위로를 건넨다.
- 관찰하는 태도의 힘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외롭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저 그들을 멀리서 바라볼 뿐, 타인의 삶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동정하거나 지나치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이런 시선이 좋았다. 최근의 몇몇 영화들은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을 지나치게 비참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불행 포르노와 같은 장면들을 보며 불쾌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저 멀리서 인물들을 관찰할 뿐, 그들을 바라보는 과한 시선이 없었기에 불쾌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었다.
감독의 이러한 태도는 관객들에게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다. 왜 혜정은 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였을지, 무엇이 효정을 극한으로 몰아넣었을지에 대해 말이다. 또한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갖고 있던 삶의 태도나 가치관 등에 대해서 말이다.
- '미스터리 힐링 장르'로서의 신선한 시도
영화는 '미스터리 힐링물'이라는 시도를 통해 어느 한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실 미스터리와 힐링이란 단어의 조합은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밤의 문이 열린다>는 이 아이러니한 조합을 잔잔하게 녹여낸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갑작스럽게 유령이 된 주인공이라는 섬찟한 소재, 잔혹한 살인 현장 등을 통해 영화의 전반부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힐링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혜정이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을 통해 삶의 가치를 전달하고,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혜정과 수양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 속에서 유령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화는 말한다. 하루를 살아가는 것 자체가 빛나는 것이라고. 누가 어떤 인생을 살던지 세상에 의미 없는 삶은 없는 것이다.
'너는 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영화에 지친 이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밤의 문이 열린다>를 통해 당신의 마음의 문 또한 열리길 바란다.
글 / 씨네리와인드 전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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