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영화]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온라인 영화 매거진 '씨네리와인드'
(www.cine-rewind.com)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차가워진 20세기를 따뜻하게 만들 명제를 쓴다. 이 문장이 따뜻한 이유는 단순히 실존이 본질보다 앞서기 때문이 아니라 이념과 갈등에 물든 사람들이 실존에 대해 깨닫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라고 정의하는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만드는 과정이 곧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재미 없는 철학 얘기를 꺼낸 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 영화지만 인간의 실존과 사랑의 본질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도 다루고 있다.
“내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만들어가는 거야.”
인생을 삶의 과정으로 만들어간다는 말은 곧 인간의 실존을 표현한 말이다. 인생과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 영화에서 '블루'라는 색깔은 비가시적인 본질을 관찰자인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주인공인 아델이 자신의 사랑과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짙어져가는 파란색을 보고 알 수 있다. 사랑이라는 창조적 행위로 사랑의 본질을 넘어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일대기를 보면서 수많은 감정을 느꼈다.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푸른 머리 대학생 엠마는 문학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아델을 푸른색의 사랑으로 물들인다.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은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이 되었다. 횡단보도에서 서로를 스치며 지나가는 장면은 클리셰 같지만 특별하게 느껴진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하고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엠마의 푸른색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아델에게 이식된다. 엠마의 전시회를 찾아가는 아델의 파란 원피스와 길 곳곳에 가득한 파란 소품들은 그녀의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수록 점차 파란 머리가 사라져 가는 엠마의 모습도 지켜봐야만 했다.
“결국 아델이 찾은 삶의 의미는 뭘까?”
기대하던 결말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화면에 대고 필자는 계속 물어보았다. 전시회를 뒤로하고 걸어가는 씬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삶의 의미는 결국 사랑으로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랑이 마침내 돌아와 푸른 빛으로 계속해서 그녀의 인생이 물들길 기대했지만,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델의 모습에서 사랑과는 다른 감정도 느껴졌다. 안쓰럽고 애틋한 파란색의 걸음걸이를 보면서 그녀가 찾은 삶의 의미를 혼자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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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랑, 그리고 다른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는 어쨌든 사랑에 있다고 이 영화는 생각한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장면은 숱한 자극적인 사랑의 장면 중에서도 공원에서 햇살을 사이에 두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다. 눈을 감은 채 각자의 체온을 전달하는 모습이 참 애틋해 보였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서로에게 끌리면서 각자의 삶에 푸른 햇빛으로 침투한다. 영화를 보고 장면들을 되돌아보니 지나친 모든 모습이 사랑이었다. 엠마가 아델에게 꿈을 찾아 나가라고 말하는 것도, 아델이 엠마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도 사랑이었다. 질투가 나도 그 행복한 관계가 깨질까 말하지 못하는 안쓰러운 모습도 사랑이었다.
“모든걸 쏟아 부을게.”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영원히 그럴거야. 평생동안.”
안쓰럽고 애틋한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더하여 그들의 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시선’에 신경쓰지 않으면서 보편적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시선’과 그들이 받는 상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들의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더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에 대해 들었을 때는, '다른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가진채로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다른 시선과 다른 사랑보다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시선 자체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았고 애초에 '다르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다른 시선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타인들의 시선과 그 사이에 갈등하는 연인의 모습을 그리려고 원래 생각했던 가사를 지워버렸다. 대신에 정말 보편적인 사랑의 모습을 담았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는 오히려 이게 어울릴 것 같았다. '사랑'을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온 아델이 사랑을 잃은 모습이 안쓰러워 그런지 그녀의 이야기를 영화의 연장선에서 쓰고 싶었다. 그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려 했던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애써 말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파란색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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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파란색은 네 마음의 색깔
하늘을 닮은 마음이 따뜻해
다른 생각에 잠겨있는 널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해
난 이대로 괜찮을 것 같아
네 사랑이 끝나더라도 말야
내 모든 걸 바칠 수만 있다면
난 파랗게 물들일 거야
내 얘기도 좀 들어봐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네가 그렇게 쳐다보는 게 싫어
내 얼굴을 보고 말해
왜 내 눈을 피하는지
네가 점점 멀어지는 게 싫어
파란색은 네 마음의 색깔
푸른 햇빛으로 네게 다가가
따뜻하게 만들어 놓고 싶어
누워서 난 이런 생각을 해
난 이대로 괜찮을 것 같아
네 사랑이 끝나더라도 말야
내 모든 걸 바칠 수만 있다면
난 파랗게 불태울 거야
내 얘기도 좀 들어봐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네가 그렇게 쳐다보는 게 싫어
내 얼굴을 보고 말해
왜 내 눈을 피하는지
네가 점점 멀어지는 게 싫어
I feel blue, blue, blue and blue
I feel blue, blue and blue today
I feel blue, blue, blue and blue
I feel blue, blue and blue today
글 / 씨네리와인드 손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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