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산책
김동률 노래를 좋아하지만
'피켓팅'에 참전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해 운 좋게도 피케팅에 성공해서 김동률 콘서트라는데 가보게 되었다(오예!). 4만명이라는 대기순서를 차분히 기다려 결국 피케팅에 성공해준 그분 덕분이었는데, 어렵게 예매한 공연을 보지못할뻔한 <우여곡절 사건>이 발생했지만 어찌저찌 우리는 늦지않게 공연장에 도착해서 두근거리는 맘으로 그의 공연을 기다렸다.
<The Grand Opening과 사랑한다는 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세곡을 연달아 부르면서 시작하는 오프닝 공연을 선보인지 벌써 수년째.
앞으로도 이 오프닝만큼은 본인 공연의 시그니처로 가져가겠다고했으니 비록 올해 기회가 안된분들도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올해는 2년만에 돌아왔다) 그의 공연에서 꼭 이 감동이 넘치는 오프닝 무대를 직접 들어봤으면 좋겠다.
매력적인 저음에, 감성이 묻어나는 가사 한알한알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귀에 때려박히는데 그냥 눈물이 빵 터질 수 밖에 없을거다.
피케팅에 성공하는 한, 다음번에도 꼭 다시 가고싶다. 다음번엔 친구들과.
내겐 그렇게 쉽지 않은 말
'사랑해요' 너무 흔해서 하기 싫은말
하지만 나도 모르게 늘 혼자 있을땐 항상 내 입에서 맴도는 그말
사랑한다는 말 내겐 눈으로 하고 싶은 말
'사랑해' 난 맘으로 하고 싶은말
나 아끼고 아껴서 너에게만 하고 싶은 그말
이 노래들을 들었을 때, 잊지 못했던 첫사랑 그녀석을 잠시 생각했다.
언젠가 이노래 가사처럼 다시 만나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말까'하는 순간들이 오리라 기다했던 시간들이 찰나의 순간, 스쳐지나갔다. 가슴아프게 듣던 노래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듣노라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고,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고, 김동률 목소리는 역시 직접 라이브로 들으니 백배는 더 좋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몰입하기 시작했다.
어제 나의 전활받고서
밤새 한숨도 못자 엉망이라며
수줍게 웃는 얼굴 어쩜 이렇게도 그대로일까
그땐 우리 너무 어렸었다며
지난 얘기들로 웃음짓다가
아직 혼자라는 너의 그말에
불쑥 나도 몰래 가슴이 시려
조금멀리 돌아왔지만 기다려왔다고 널 기다리는게 나에게 제일 쉬운 일이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동률님이 좋아하는 단어들이 있는 것 같다. 이를 테면 '영영'같은 단어들.
내 맘을 알아챘을까 좀 멀찍이 앞서 걸어갈 때 무심한 듯 흥얼거리던 내 노래를 들었을까
걸음을 좀 늦춰볼까 좀 뒤쳐져 나를 따라 걷는 너를 향해 홱 돌아서서 내 두 팔을 벌려볼까
벌써 이 밤이 다 가려 해 먹빛 하늘 아래 들리는 건 네 숨소리와 나의 심장소리
이렇게 세상이 멎고 난 붙잡아 두려 해 시간을 멈추려 해
언젠가 우리 어떤 날에 마법이 풀리고 다 스러진다 해도 더는 너와 나 둘이 아니려 해
이젠 너와 나 하나가 되려 해 영영 영영
말해줄 때가 된 걸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반짝이던 너의 두 눈이
조용히 감기는 순간 벌써 이 밤이 다 가려 해 새벽 안개 속에 보이는 건 네 속눈썹의 가느다란 떨림
이렇게 시간이 멎고 난 입을 맞추려 해 난 주문을 걸려 해
하지 말아야 할 말과 눈빛, 말투,몸짓 모두를 그에게 쏟아냈던 어젯밤을 후회하면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면 옛 얘기가 될 수 있는 연인의 이야기들...
옛 얘기지만 다 지나버린 얘기지만 느닷없이 또 날 괴롭혔고 곱씹으면 다 알 것 같아
그래서 더 난 미치겠어 왠지 모를 화가 났었고 그날따라 난 아이 같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눈빛 말투 몸짓 모두 네게 쏟아냈지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처럼 슬픈 눈을 하고선 차라리 나에게 화라도 냈담 그럼 난 편했을까
그렇게 내게 벌을 준 걸까
먼 얘기지만 이룰 수 없는 얘기지만 버릇처럼 또 난 떠올렸고 셀 수도 없이 고치고 또 바꾸고 빌고
그런 헛된 상상 속에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 대신 나를 안아 주었지
차라리 나에게 화라도 냈담 그럼 널 잊었을까 그렇게 내게 벌을 준 걸까
어렸을때 자주 들었던 곡인데 숨겨진 명곡 부르기 코너 같은 느낌으로 굳이 굳이 이곡을 찾아내어 불러준 동률님! 짝사랑+찌질한 감성이 묻어난 곡들을 평소에 즐겨듣곤했는데 이곡은 그런 곡들 전문인 박효신 혹은 휘성(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이 불러도 어울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들었던 곡이다.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반가웠다.
죽을 만큼 사랑한 적 있나요 태어난 것조차 후회 해본 적 있나요
그렇다면 내 맘 혹시 알까요 사랑한단 말도 한번 못한 못난 나를
다 알아줄 꺼라 믿었죠 꼭 이뤄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댄 나의 마음을 끝내 영영 모를 것 같네요
그렇게 내가 맘에 안차요 그렇게 내가 모자란 가요 좋은 친구에서 더는 헛된 욕심일까요
나 얼마나 더 기다릴까요 언젠가 그대 한번쯤은 나 같은 사랑에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그때 나라도 곁에 있을까요 그래야 할까요
왜 그댄 먼 곳만 보는지 늘 그대 옆에 있는데 혹시나 그댄 처음부터 날 그냥 쉽게 생각했었나요
좋은 친구라도 내겐 너무 과한 걸까요 나 얼마나 더 기다릴까요 언젠가 그대 한번쯤은 나 같은 사랑에 기댈 곳이 필요할 때 그때 나라도 곁에 있을까요 그래야 할까요
동률님 공연엔 기타, 드럼,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모든 어쿠스틱 연주자들의 연주가 듣기 좋았지만 이 곡에서만큼은 특히 반도네온 연주가 돋보였다. 탱고버전으로 편곡한 망각. 원곡보다 탱고버전이 훨씬 좋았는데 이 반도네오니스트가 연주하는 피아졸라 곡들도 듣고싶어져서 집에 와서 '고상지'라는 인물을 좀 찾아봤다. 역시나 유명인...나만 몰랐던.
지금의 그와 혹 내 얘기가 나올 때
사랑했다고 솔직히 말을 하는지 아니면 그저 어릴 적에 스쳐 지나간 남자라고
가볍게 웃고 넘어 가는지
길거리에서 우연히 나를 만날 때 오랜만이라 반갑게 말을 건넬지
아니면 그냥 날 못 본 척 고개를 숙여 외면할지 어쩌면 아예 못 알아볼지
날 사랑했던 기억이 때로는 힘이 되는지 오히려 후회되는지 생각도 않는지
날 원망하던 기억도 쉽사리 잊혀진 건지 꼭 그만큼만 남겨뒀는지
함께 불렀던 그 노래에 한번쯤 나를 생각할지 무심코 그냥 흥얼거릴지
함께 했던 우리들의 지난날의 기억들을 다 하얗게 지워 버리고 난 그곳엔 뭘 채웠는지
날 사랑했던 기억이 때로는 힘이 되는지 오히려 후회되는지 생각도 않는지 날 원망하던 기억도 쉽사리 잊혀진 건지 꼭 그만큼만 남겨뒀는지 언제쯤 나는 다 지울 수가 있을지
인기곡들을 부르면서 오프닝을 시작했으니 처음 공연와준 분들이나, 조금은 생소할 남성 분들에게 빚진마음 해소하고 본격적으로 덜알려졌지만 본인이 소개하고 싶은 곡들을 부르는 동안 동행한 그는 조금 지루해했다. 본인이 아는 인기곡들 '감사'나 '동반자' 같은 곡들이 나오지 않자 전날의 숙취로 인해 급격히 피곤해하다가 문득문득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의아해했다.
<산책>이라는 노래를 듣다 우는 나를 보면서 '이거 그냥 산책하는 노래 아니야?' 해맑게 웃는 이 남자....
어쩌면 좋을까(너무 귀엽잖아....핫)
동률님의 산책이란 곡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니까 감성이란게 더 폭발했다. 이 곡을 대략 요약하자면,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어느 봄날 강가를 걷고 있는데
그날따라 듣는 음악도 너무 좋고 따뜻한 바람에 둥실 마음이 동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면서 고이 간직했던 그 이름이 떠오른다.
이렇게 볕 좋은날에 애써 잊고 있던 그이름을 불러도 되는건지, 울어도 되는건지.
함께 걷자고 했던, 나란히 걷자고 했던 그 사람이 이토록 날이 좋아서 생각났다, 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인데......울지 않을 수 없는데....."그냥 산책하는 노래 아니냐며" 우는 내게 농담을 던지는 그분. 어쨌거니 이렇게 1부가 마무리되었다.
콰르텟이 뭐야? 라는 그의 질문에 다행히 답변을 해줄 수 있었다. 4개의 악기로 구성된 합주, 4명이 함께 연주하는 것. 대충 4명이 한다는 뜻이야, 라고.
고상지 콰르텟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도 멋지고, 고상지님도 넘 예뻐서 비주얼 콰르텟으로 불러도 될듯싶다. 고상지님 헤어스타일이 특히 맘에 들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따라해보고 싶다. 아무렇게나 묶었는데 어쩜 그렇게 예쁜건지. 말라서인가....
암튼 동률님 콘서트 인터미션에서 동률님이 작곡하고 김원준이 노래한 <쇼>를 연주해주셨다.
뮤지컬을 동경하는 듯한 동률님이 뮤지컬 무대처럼 꾸민 2부. 시작, 동화, 모험, 황금가면 같은 곡들로 2부의 오프닝이 꾸며졌는데 아날로그 무대연출을 위해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
드디어 그가 아는곡이 하나 나왔다. 싱어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동률님이 싱어롱 허락해준 유일한 곡이기도 했다 ㅎ 이곡을 끝으로 다시 지루해하는 몇몇 남성 관객들 ㅎㅎ 다음번엔 남성관객들도 좋아할곡들도 좀 불러주세요~
김동률 콘서트 한주 전에 줄리 생일파티를 하고 올림픽공원을 걷다가 몇몇 스탭들을 두고, 오케스트라와 공연 연습을 하던 동률님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난건 아니지만 멀리서나마 그의 공연연습곡(셋리스트)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열시가 넘은 시각, 그가 연습했던 곡이 답장이었다. 공연전에 예습하면서 많이 들었던 곡, 답장. '사랑한다 말해도'도 듣고 싶었는데, 말이다. 다 욕심낼순없으니 다른 주옥같은 곡들은 또다음 공연에서 기약하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래보련다.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 나 알다시피 좀 많이 느려서
몇 번이나 읽어도 난 믿어지지 않았나봐 답을 알 수 없던 질문들
다음날에 많이 웃겨줘야지 난 그랬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넌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널 알아주지 못하고 더 실없이 굴던 내 모습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내일 맛있는 거 먹자고 혹 영화라도 볼까 말하던 내가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네 앞에 선다면 하고 싶은 말 너무나 많지만
그냥 먼저 널 꼭 안아 보면 안될까 잠시만이라도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된다면
그때보다는 잘할 수 있을까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 나 아무래도 내일 쓸까 봐 또 미룰래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
지금 보내더라도 어차피 달라질 건 없다고 넌 이미 모두 잊었다고 읽지도 않을 수 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모른 척했던 시간이 넘 길었어
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널 볼 수 있대도 어쩌면 나는 그대로일지 몰라
사실 아직도 그 답은 잘 모르겠어 미안하단 말은 안 할래 그렇게 되면 끝나버릴까 봐
그러고 나면 똑같아질까 봐 혹시 내일이면 알게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미루고 내일도 미루겠지만
널 사랑해 이것만으론 안 될지 몰라도 이제 와서 다 소용없더라도
이것밖에 난 하고픈 말이 없는데 사랑해 너를
수백번을 들어도 좋은 곡. 수십년이 지나도 내내 좋을 곡. 기억의 습작.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 봐 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만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이 노래의 후렴구 우우우~ 하는 부분에서 평소보다 왜 더 슬프게 느껴졌는지 콘서트를 마치고서야 알았다. 김동률의 노래는 좋아했지만 오랜팬이 아니었기에 내친구 동욱이를 추모하며, 라는 메세지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당시에는. 콘서트를 마치고 찾아보니 동욱은 바로 전람회 멤버였던 김동률의 음악동지이자 절친이었던 서동욱...이었던 것. 전람회는 알았지만, 서동욱의 존재도, 그가 2024년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실도 몰랐기에 내게는 모든게 너무도 놀라왔다. 다시금 첫사랑, 기억의 습작을 듣고 있노라니 그때 현장에서 왜그렇게 눈물이 나고 숙연해졌었는지 그 느낌을 알 것 같다. 많이 늦었지만..
몇 번을 지우고 지우다가 겨우 쓴다.
너를 보내고 온 다음날 오롯이 혼자서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왜 장례식은 삼일뿐일까.
너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나누던 지난 삼일이 너무 고맙고 내겐 너무 힘이 됐는데 말이야.
동욱아.
너를 빼고 나의 청춘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그리고 전람회.
우리가 가장 젊고 아름답고 빛나던 때, 우리는 늘 함께했다.
내가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던 너.
그래서 나는 전람회를 마치고 널 보낼 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단다.
그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너는 너무 멋지게 전설을 써 내려갔지.
내가 너무 힘들어서 무너질 때면, 너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네가 힘들 때도 내가 네 옆에 있었길 바란다.
그러지 못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너무너무 미안하다.
너무 일찍 나를 떠나서 너무너무 화가 나고 원망스럽구나.
너의 빈자리를 내가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라고 나쁜 자식
너무너무 보고 싶다 동욱아.
사랑하고 미안하고 고맙다.
'조금 더 나이들어 다시 보자'는 동률님. 너무 오래지 않아 다시 볼 수 있었음 좋겠다.
재빠르게 2025 셋 리스트가 올라왔다. 공연을 함께한 사람들도, 함께하지 못한사람들과도 그날의 감동을 나누고싶다. 들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