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샌드위치 휴가를 맞이해 1박 2일로 경주에 다녀왔다.
아침은 '김밥러버' 미리추천으로 교리김밥을 먹었다. 어느 지역을 가던 이름난 김밥집은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 20년만에 인정했다. '김'은 싫어하지만 '김밥'은 꽤 좋아하는 것 같다고. 후후훗!
점심은 먼저 경주를 다녀간 에밀리가 추천한 꼬막비빔밥으로 먹었다. 향화정이라는 곳이고 경주 맛집 추천 1위인 집인데, 개인적으로 꼬막비빔밥은 삼성동 <뻘빹에 핀꽃> 이 더 맛있다. 별다섯개 줄 수 있는 제니퍼씨 단골집인데 서울에서 꼬막비빔밥 먹고싶은 분들이 있다면 추천해딀고 싶다. 내 입맛엔 향화정보다 더 맛있다!
저녁은 저녁 8시 30~9시까지만 last order를 받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가고싶은맛집들에선 매몰차게 리젝당하고,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준 소갈비찜집에서, 소갈비찜과 낙곱새를 먹었다.
동탄에서 출발하는 새벽 5:57분 SRT 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열차내에서 코골며 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알람이 울렸는데 대부분 무시하고 계속 주무셨다. 내일도 아닌데 내가 어찌나 불안하던지. 롱디 연애도 힘들지만, 롱디 출근은, 와우, 감히 상상할수가 없다. 집과 회사 20분컷인 나로써는 ㅠㅠ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 붐비는 주말보다 평일이 경주여행으로는 더 좋다. 주말에 황리단길과 경주시내는 도로가 차로 가득차 이동이 어려웠는데 경주 여행 첫째날은 평일이어서였는지 오릉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동안 사람은 단 한사람도 마주치지 못했다. 오릉엔 오냥이와 관리자뿐이었다. 오냥이는,
오릉을 지키는 고양인데 오릉을 걷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개냥이 스타일의 고양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오릉의 고양이란 의미로 미리가 오냥이라 이름지어주었다. 방금 지어진 자기 이름을 아는지, 오냥아, 하고 부르면 제갈길을 가다가도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똑똑하고 착한 오냥이. 그 넓은 산책터 오릉에서 외로웠던 모양이다. 뭐라도 주고싶건만 가방에는 아무것도 줄게없었다. 하필이면 과자 부스러기 하나 없었다. 앞으로는 여행지에서 갑작스럽게 개와 고양이들을 만날것을 대비해 간식을 좀 챙겨가야겠다.
"여기 대릉원에 사람들이 사진찍는 스팟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 함께 갔던 제주도의 스누피 가든에서 뒷모습 찍었던 그런 스팟같은데 말이야?"
"맞아. 바로 그런 스팟. 저기 사람들 줄서있네, 저긴가보다!!"
하기로 마음먹은 것들은 반드시 하고야마는 target oriented 미리짱이 대릉원 사진스팟을 찾아다니다 결국 발견해냈다. 두나무를 뒷배경으로 뒤고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는 것. 우리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뒷사람이 앞사람 커플사진을 찍어주는 관례(;)같은것이 있었다. 스윗하게도. 그런데 스윗한 부부가 찍어준 우리 사진은 별로 쓸만한게 없었다. 모조리 역광이어서였는지 전반적으로 사진이 모두 어둡게 나왔다. 줄 선 보람도 없이. 줄 선 보람은 없었지만 대릉원 사진스팟에서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소소밀밀에서 산 그림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그리 아깝게 흐른 시간은 아니었다. 초록초록한 릉과 햇살가득했던 10월의 어느 맑은 수요일이라서였는지 기분나쁠일이 하나도 없던 하루였다.
소소밀밀에서 재미있는 그림책을 여러권샀다. 그림책 작가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이었는데, 책방사장님이 남편이 있는 그림책까페라며 '소소밀밀까페' 명함을 주셨다. 꼭 들러보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들르지 못했다. 이튿날 여행에서 메인 일정으로 정해둔 곳이었는데. 계획이라는게 그런 법이니까. 잘 틀어지곤한다. 내내 맑다가 비도 내리고 비바람이 거세지고 핸드폰이 방전되어서 폴바셋과 스벅에서 시간을 조금 길게 보냈다.
그와중에 소소밀밀을 발견한 것은 꽤나 기억해둘 일이기도하고 기록해둘일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 처음 소심한 책방(지금의 소심한 책방이 아닌, 초창기 소심한 책방)을 만났을때처럼 어찌나 설레고 좋던지. 다음번 경주여행에 갈곳을 남겨두고 떠나게 되어 더 좋다. 다시 가야할 이유가 생겼달까.
문득 제주도에서 우리의 발길을 묶어둔 책방 소리소문도 그리워졌다.
국민학교때 한번, 중학교때 한번 두번정도 다녀갔던 터라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커서 들른 불국사가 주는 느낌은 꽤 달랐다. 학교에서 강제로 온것과 스스로 온것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니! 아이에게 어떻게 공부를 시키는것이 좋을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아이가 없다. 조카들에게라도 가르쳐주고 싶건만 이것들이 이미 너무 커버려서 이모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
다시 찾은 불국사는 전혀 새로웠고 뭉클했다. 10월초의 계절이 주는 느낌도 한몫 더해졌겠지만.
삼성동에서 근무하는 터라 봉은사와 정릉을 산책할 수 있는 지리적 혜택이 있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종종 걷곤 하는데 봉은사에서는 결코 느껴지지 않는 아우라같은게 불국사에는 있었다. 다음번에는 일주일정도 경주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불국사에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했다. 아무래도 차가 있으면 기동력이란게 생기니까, 평일에 더케이호텔 예약하고, 렌트해서, 경주사람체험을 일주일정도 해볼 작정이다. 매번 그런 작정들을 하고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게 함정이지만.
경주의 봄과 여름과 겨울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주가는 붕어빵 사장님 말씀처럼 경주는 가을이 제일 좋을것 같다. 여행에 날씨가 미치는 영향이 만만찮은데 이 많은 릉들을 산책하듯 만나보기엔
아무래도 무르익은 봄과 가을이 아닐런지.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오후 5시 SRT 타고 경주에 7시 무렵 도착한 줄리를 픽업해서 황리단길을 걷고, 대릉원 둘레에서 밤산책을 했다. 낮에 긴 여운을 주었던 소소밀밀에도 데려갔는데 당연히 문이 닫혀있었다.
대릉원 밤산책은 고즈넉하니 좋았는데, 저녁 9시 이후 공공화장실이 닫혀있어서 화장실 찾느라 고생했다.
경주 황리단길....공중화장실 자정까지는 오픈해야하지않나 건의를 한번 해봅니다.
더케이호텔 조식, 추천할만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꽃은 호텔조식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에 조식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가짓수가 많지는 않아도 더케이호텔 조식은 합격이다!
점심은 쫄깃한 식감 좋아하는 줄리 추천 물짬뽕집에 들렀는데 이곳의 명물은 유부 물짬뽕인 것 같다.
제일 맛있었다. 내입맛에는. 나는 그냥 평범한 비빔쫄면을 주문했는데 비빔쫄면은 솔직히 경기도 양평 <대문집>이 훨씬 맛있으니까 양평에 들르실 일이 있다면 드셔보시길 추천드린 ㅎㅎㅎ
떡볶이와 쫄면 양평 맛집 #대문집
경주의 물짬뽕은 쫄면을 따뜻한 국물에 먹는게 특징인데 쑥갓의 향기로움이 그득한 휴게소 우동같은 쫄면으로 면발이 탱글탱글 맛있었다.
저녁은, 고등어 솥밥으로 마무리했다. 셋다 솥밥을 좋아해서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싹싹 솥을 다 긁어 먹었다. 경주에서의 마지막 끼니라 대충먹기엔 서운했기 때문이라면 핑계고 배는 안고팠지만 먹다보면 또 그렇게 먹어지는게 한그루 특징이기도 하다. 대식가 하나에 미식가 둘.
다음번 여행에도 더케이호텔에서 묵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뷰는 당연히 황룡사 뷰로.
조식도 맛있고, 온돌침대방도 깔끔하고, 개모차에 개전용 엘베까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친절한 더케이호텔에서 더할나위없이 편히 지냈다. 호텔 로비에 마련된 꽃누르미 전시를 통해 오승빈 작가 님도 만나뵈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가슴 뭉클했던 것은 경주 사람들의 친절함이었지만 공간때매 울컥한것은 이곳이었다. 경주 최부잣집에서 글로만 읽었던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최부잣집의 육훈을 읽고 그분의 집터를 둘러보니 그야말로 감회가 새로웠다.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근방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재산을 만석이상 쌓지마라. 진사이상 벼슬하지마라. 하나하나 가슴에 새길말들이다. 전쟁시에도 노비들이 도망가지않고 집을 지켰다는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됐다. 아직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가 된다면 어떻게 나누고, 이웃에게 베풀고, 또 사회에 환원해야하는지도. 일단 부자가 된 후에 생각하란 사람들도 있지만 그땐 너무 늦다;;; 미리미리 생각해두어야지, 틈틈이.
금관총 전시관에 들러 어떻게 지금의 릉처럼 동그랗게 무덤을 지을 수 있었는지 설계과정을 배우고, 시내에서 친구들이랑 휴대폰 케이스와 맥세이프 그립톡을 샀다. 경주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딱딱 필요한 정보만 친절하게 주시는지, 군더더기없이. 경주사람들 매력에 빠진 순간들이 참 많았는데 휴대폰 케이스집 매니저님도 그랬다. 자력이 센 제품으로, 얼마든지 그립톡을 꺼내서 장착해보게 도와줘셨다. 토끼를 다른색깔로 바꾸려고 시도했었지만 '진상고객'이 되지 말자는 친구들의 만류에 최종적으로 갈색토끼와 함께 지내고 있다. 파란색 스마일로 바꾸고 싶었는데...
2024년 10월, 경주여행 끝
조만간 다시 만납시다. 조금 더 공부하고 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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