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log Feb 17. 2023

엔도 슈사쿠 ┃ [그리스도의 탄생 ┃ 가톨릭출판사

가톨릭출판사 북클럽1기 




엔도 슈사쿠 <그리스도의 탄생>을 읽고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엔도 슈사쿠의 책은 그저 여느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일거라는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나자렛 예수가 죽고 난 이후,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비로소 제자들과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신앙의 씨앗이 되었는지 말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예수가 어째서 죽은 후에 하느님의 아들로 불리게 되었을까?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저버리고 도망친 제자들은 왜 그 후에 목숨을 걸고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했을까? 무력한 예수가 영광의 그리스도로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어떻게 강한 신념과 신앙을 지니게 되었을까?」 나는 2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위와 같은 질문을 떠올려본 사실이 없었다. 교리공부를 하고, 신부님의 강론을 듣고, 신앙 서적을 읽으며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 다른 물음은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엔도 슈사쿠의 이러한 질문들이 상당히 날카롭고 또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의 앞부분은 다소 어렵게 느껴졌다. “예수 자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성서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주장을 시작으로 기존의 통념에 계속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다. 중반부로 가면서 예수님의 제자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조금씩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책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한 스테파노 성인의 일화를 시작으로 사도 바오로의 회심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바오로 성인은 생전의 예수님을 본 적도,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적도 없었다.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가 짧은 생애 동안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문제보다, 그가 왜 십자가에 달렸고, 부활했는가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졌는데, 다른 제자들이 ‘생전의 예수’를 중점이 두었다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에 중점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낸 것은 하느님이고, 하느님과 인간의 벌어진 틈을 메우기 위해 세상의 보내졌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한 하느님의 아들인 것이다. 바오로에게 그리스도는 율법이라는 자력 구원의 한계를 초월하여 인간에게 구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책은 바오로 사도의 7년간의 선교여정을 중심으로 그가 확립한 그리스도관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에 대해서 생애와 죽음에 대해서 이처럼 깊이 있게 묵상해 볼 기회가 없었는데, 사도들의 인간적인 부분과 신앙적인 고뇌까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많은 공감이 갔다. 





 책의 말미에 작가는 다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 될 때 ‘하느님은 왜 침묵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는 왜 재림하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신자들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풀 수 없었기 때문에 괴로워했지만, 오히려 이 고통은 신앙을 유지하고 굳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 모든 이에게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있고, 여기에 답할 자유를 부여한다. 어떤 이는 하느님께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는 하느님은 예수가 말한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유를 인간에게 부여하시고 떠난 것이다. 청년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말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믿을 수도 떠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점이었다. “인간이라면 무조건 맹목적으로 나를 따라야한다.”가 아닌 하느님이 사랑으로 빚은 피조물이기에 우리 인간의 선택과 의지를 존중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분께서 이리가라시면 이리가고 저리가라시면 저리가는 것이 바람직한 신자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순명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도 여겼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심도 있는 물음에 고민해 볼 수 있었고, 명확한 답 또한 알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주님 곁에서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 



▼ [그리스도의 탄생] 서평- 블로그ver


매거진의 이전글 손희송 ┃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 가톨릭출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