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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Mar 17. 2023

최민순 신부 │ [님 밤] │ 가톨릭 출판사





최민순 신부 시집 <님 밤>을 읽고



     

 마음이 힘들고 울적할 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원하는 책을 잔뜩 사다가 방에 앉아 모두 읽고 나면 정말 ‘책 속의 길이 있다’는 말처럼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제 자리를 찾았다. 그중에서도 시집은 짧고 간결하면서도 작가의 의도가 함축적으로 녹아있어 부담없이 읽기 편한 책이었다. 


 이번 가톨릭출판사 북클럽을 통해 최민순 신부님의 시집 <님 밤>을 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첫째로 책 표지가 아름다웠다. 양장으로 된 책 표지에 신부님의 시 ‘두메꽃’이 실려 있었고, <고백록>, <신곡>, <시편, <아가>를 최초로 완역한 최민순 신부의 모든 것이 담긴 시집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이것만으로 나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최민순 신부님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최민순 신부님의 시는 우리말과 우리말 특유의 운율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 높이 평가받는다. 최 신부님의 시를 소리 내어 읋으면 마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창작 시 뿐만 아니라 번역 역시 탁월하여 신부님의 시와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십자가의 성요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의 시를 번역한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님 밤> 시집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시집이라 읽기 수월할 것 같다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단어나 문장에 예스러운 표현이 많아서 한 번 읽고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을 다 잡고 책을 두 번, 세 번 정독했더니 그 의미가 천천히 마음에 다가왔다. 원문의 느낌과 운율을 살리고자 신부님이 쓴 당시의 표기를 가능한 그대로 실었기 때문이다. 현재에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은 각주가 달려있어서 해석하듯이 시를 분석하며 읽었다. 느낌만으로 시를 읽을 때와는 감상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덕분에 ‘신부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이 시를 쓰셨을까?’에 대해 깊숙이 고찰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시는 ‘채송화의 노래’라는 자작시였다. 여기서 나는 뜰 모퉁이 버려진 채송화로 표현되며 외로움을 지키는 풀이다. 나의 사랑하는 님(하느님)은 나(채송화)의 봄과 여름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구를 바치고 돌려주신다. 내가 숨 쉬라고 대기를 주셨고, 목마르지 말라고 맑은 이슬을 주셨다. 님의 노래 머금고 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면 태양이 나를 꽃 피우고, 바람은  간들어지게 춤을 추게 한다. 나는 오래오래 살아 끝없이 자라서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까지 키가 닿고 싶다는 내용으로 시는 끝이 난다. 

 성녀 데레사의 ‘인내 (Nada te turbe)'라는 번역시는 아빌라로 떠났던 성지순례 여행을 떠올리게 했다. 데레사 성녀가 쓴 기도문을 보았는데 마지막 구절이 ‘solo dios basta' 우리 말로 번역하면 ‘오직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도다.’ 라는 내용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민순 신부님의 시집에서는 ‘님을 모시는 이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로 번역되고 있었다. 


 최민순 신부님의 시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신부님의 글 속에 가득 담겨 있는 ‘영성’ 이라고 한다. <님 밤>이라는 책을 통해 시 안에는 최 신부님이 삶과 신앙 속에 깃든 영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님’으로 표현한 신부님의 글처럼 그분을 향한 일편단심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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