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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Jan 17. 2020

워킹맘 티가 나지 않는 워킹맘이라고?

워킹맘의 이직

이직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자꾸만 내가 나이를 먹고 있고 이 조직에서 이제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아닌 ‘시니어급’ 직원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는 IT 업종의 회사로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이다. 인사데이터를 확인해보니 약 1천 명 정도의 직원에서 나보다 생년월일이 빠른 직원은 총 200명이 되지 않는다. 남녀 비율은 거의 50:50이지만 아무래도 전체적인 연령대가 높지 않다 보니 워킹맘의 비율이 낮다. 


내가 속한 본부 구성원의 약 40여 명으로 나는 나이 많은 순서로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남녀 비율은 회사 평균보다 여성 비율이 더 높아서 남성:여성의 비율이 1:2 수준이다. 하지만 본부 내에서 워킹맘은 나를 포함하여 고작 2명이다. 


미혼일 때만 하더라도 회사에서 여성 구성원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평균 연령대는 얼마인지, 워킹맘은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워킹맘이 이렇게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역할과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지(!)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회사 업무 100 + 육아 100 + 집안일 100 = 300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시니어급인 만큼 회사에서는 선배, 선임으로서 모범을 보여주기를 요구하며 같은 본부 내 많은 직원들에게 새로 입사한 경력직 직원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리고 나 역시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




이직 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아서 상사에게 몇 가지 장점과 앞으로 기대 사항에 대한 피드백을 들었다. 상사의 칭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점 (경력과 연륜에서 느껴지는 장점이랄까)

워킹맘이지만 워킹맘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점(!)


이었다.


첫 번째 장점은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장점은 과연 내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친정엄마와 함께 지내는 상황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회식이 생겨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직장생활에 적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공식적인 회식뿐 아니라 삼삼오오 개인적으로 모이는 저녁 모임에도 가급적이면 참석하려고 한다. 워킹맘이지만 내가 이렇게 저녁 시간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나의 상황이 꽤 나은 편(소위 친정엄마가 도와주는 금수저 워킹맘)이기 때문이다.


워킹맘인데 워킹맘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이 말은 결국 싱글일 때와 마찬가지로 일정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모든 워킹맘의 상황이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육아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일정이 자유롭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출근을 해야만 하는데도 휴가를 내고 일을 못 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직 워킹맘의 수가 많지 않은 이 조직에서 근무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이 다른 동료들에게 일반적인 워킹맘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워킹맘의 모습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행동하는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상사의 피드백을 통해서 일반적으로 사회가 생각하고 있는 워킹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돼 씁쓸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소위 말하는 <워킹맘 티가 나지 않는> 행동을 해야 일하는 엄마가 자연스러워지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는 지금의 나는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를 적정선으로 삼고 행동해야 할까? 


이직 후 6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워킹맘 티가 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있다. 분명히 칭찬으로 하는 이야기겠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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