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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Aug 13. 2019

경단녀는 선호하지 않아요

경단녀와 워킹맘은 모두 사회에서 선호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OOO 기업의 HR 팀 경력직 모집에 OOO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메일로 보내드린 JD를 확인하시고 통화 가능한 시간대 알려주시면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직을 위해서 한 채용 관련 사이트에 이력서를 오픈해 두었다. 몇몇 헤드헌터와 컨택이 됐는데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헤드헌터 한 명이 있었다. 정중하게 문자로 모 대기업 계열사의 HR 팀 경력직으로 추천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JD를 확인해 보니 내 경력사항과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연락을 하게 됐다.


헤드헌터는 해당 회사와 직무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다시 한번 나의 이력을 체크하기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


- 헤드헌터 : 현재 OOO 기업에 OO 년 O월부터 재직 중이신 것 맞으시죠?
- 나 : 네, 그런데 지금은 O월부터 육아휴직 중입니다.
- 헤드헌터 : ... (몇 초 간의 침묵) 어쩌죠, 해당 기업에서 "경단녀"는 선호하지 않습니다.
- 나 : ... (다시 몇 초간 침묵) 네, 그런가요?
- 헤드헌터 : 아, 그 기업에서 얼마 전에 육아 문제로 두 명의 여직원이 퇴사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있는 여성분은 채용하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그 헤드헌터는 내 이력을 보고 내가 아이가 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했다. 등록된 이력서에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재직기간을 표시할 뿐 육아휴직 중인지 나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은 자세히 기재할 수 없었다. 때문에 통화를 하면서 정확하게 현재의 상태를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사실대로 육아휴직 중이라고 말했더니 헤드헌터는 나를 바로 '경단녀'로 만들어 버렸다.


경. 단. 녀. 

풀어서 표현하자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다. 나는 사실 이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 단어는 마치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의 경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할 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기 위한 시간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전업주부로서 가정 경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여성이 하는 이런 일련의 모든 활동을 '경력 단절'이라는 표현으로 모두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주변에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일을 그만두는 남성들도 많은데 그 남성들을 보고 '경단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여튼 간에 나는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 헤드헌터에게 '경단녀'라는 말을 들었다. 헤드헌터는 내 이력서에 재직 중인 회사가 표기되어 있고 그 당시 대학원에도 다니고 있었으니 나를 '아이가 있는 여성'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모양이다. (게다가 그 헤드헌터는 여성이었다.) 아마도 그 헤드헌터는 주변에서 일하는 엄마나 공부하는 엄마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양이다.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그 헤드헌터의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자질이 의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현실을 반영하는 듯싶어서 씁쓸했다. 얼마나 주변에서 워킹맘이나 공부하는 엄마를 본 적이 없으면 '육아휴직' 중이라는 말에 대뜸 '경단녀'라는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을까.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아이를 낳았음 = 곧 직장을 그만 둘 예정'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워킹맘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이를 낳을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는 여성 비율이 50% 정도 되는 회사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여성 인력은 일부 직군에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미혼인 여성이 훨씬 많았다. 육아휴직 중에 문화센터나 아파트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만난 엄마들 중에서도 아이를 낳으면서 더 이상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그만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고 나처럼 육아휴직 중인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행한 <2018 워킹맘 보고서>를 보면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워킹맘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평균 5.5년 후 결혼하고 결혼 후 2년 이내에 첫 자녀를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약 7.5년의 시간은 대리 중간~말년 차 정도로 한창 실무능력을 쌓고 전문성을 발휘하며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창 경력개발에 속도가 붙을 시기에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경단녀'가 되느냐 '워킹맘'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워킹맘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전처럼 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워킹맘이 첫 직장에서 계속 재직 중인 비율은 19.4%로 전체의 1/5도 되지 않으며 근로소득이 높을 경우 첫 직장에 근무하는 비중이 높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근로소득이 높을수록 육아정책이 그나마 잘 되어있는 대기업에 재직 중인 비율이 높거나 집안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을 해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직장의 이직 횟수가 증가할수록 '타 직장으로의 자발적인 이직'이 아니라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의 가정환경'에 의한 사유 비중이 증가한다. 즉, 여성은 직장생활을 선택하는 것도 본인의 의사가 아닌 가정환경의 영향에 의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을 선택할 때도 '가정생활과 양립 가능한 근무 여건'이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 두면 '경단녀'라는 딱지가 붙고, 가까스로 '워킹맘'이 됐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인 의사가 아닌 가정환경에 의해서 선택한 직장이기 때문에 '열정이 부족하다'는 편견의 시선을 받게 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으니 무가치하다고 말하고, 일을 하고 있으면 일이 1순위가 아니니 성의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모든 사람들이 각자가 맡은 역할 그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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