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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Aug 01. 2019

워킹맘이란 것은 이직에서 단점이기만 할까

아이를 낳은 후 두 차례 이직을 했다. 그리그 그 과정에서 여성이고 엄마이기에 다른 후보자들과 다른 기준을 통해서 심사되는 경험을 했었다.


"애는 누가 키웁니까?"와 유사한 내용의 질문은 거의 대부분의 면접에서 빠지지 않았고, 헤드헌터에게서 여성이기에 특정 기업에 서류접수조차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으며 육아휴직 중이라는 말에 '경단녀'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들었다. 대놓고 <남성 선호>라는 자격요건이 적혀있는 채용 건을 보기도 했다.


이직을 결심하고 최종적으로 입사할 회사를 결정하기까지 6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탈락 결과를 받을 때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자꾸만 곱씹게 되고 자존감이 저하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고,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해야 잘 맞는 회사를 찾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자신을 기업에서 원하는 이미지에만 맞춰 포장하는 것은 나에게도 적임자를 찾는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회사는 단순히 경력사항을 화려하게 해 줄 곳이 아니라 내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오로지 업무와 일하는 능력을 제1의 기준으로 놓고 후보자를 바라봐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력서를 쓸 때나 면접에 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갖게 되었다. 경력직 이직은 그 무엇보다도 'Fit'이 맞는 조직을 찾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되 그 솔직함을 나의 장점으로 받아들여 줄 회사는 분명 어딘가에 있다.




가족관계는 당당하게 드러낸다.


최근에는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영향으로 가족관계(혼인 여부, 자녀 여부)를 밝히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 온라인 채용포털이나 기업의 채용사이트를 통해서 접수하는 경우에는 대개 가족관계 작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별도의 가족관계 작성을 할 수 없다면 자기소개서 등의 내용에 워킹맘이라는 것을 짐작할만한 내용을 넣을 수도 있다. 나는 워드 파일 등의 자율 양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는 경우(특히, 헤드헌터에게 이력서를 직접 주는 경우가 많이 해당된다)에 항상 가족사항을 별도로 써넣었다.


워킹맘이라는 사실이 이직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될지 몰라도 절대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고 엄마라서 나를 꺼릴 회사라면 애초에 서류통과가 되지 않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다. 


회사도 나를 심사하는 것이지만 나 역시 '워킹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회사인지'를 심사하는 기준으로 바로 이 가족관계를 활용했다. 어차피 내가 일하는 엄마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며 이것을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회사의 인식을 사전에 심사했다.



내가 '워킹맘'이라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라 강점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워킹맘'이라는 사실이 이직 시장에서 너무 치명적인 핸디캡인 것 같아서 자신감이 저하됐었다. 하지만 가족관계를 당당하게 밝힌 이력서가 통과돼 면접에 임했다면 이제 더 이상 내가 워킹맘인 것은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총경력이 10년을 넘어가면서 파트리더 등 초급 관리자로서의 역할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제는 업무 전문성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관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성 리더에게 '포용력과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재직했던 회사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직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여성 리더의 모습은 다음과 같았다.


- 감성적인 부분과 섬세함을 살려 관리하는 리더

- 일과 가정을 균형 있게 병행하는 리더

- 멘토의 역할을 하며 성장을 위한 자극제 역할을 해 주는 리더 (특히 여성 구성원들에게)


사회가 여전히 남성 리더와 여성 리더에게 기대하는 모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에게 기대하는 섬세함이나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요즘과 같이 수평적 조직문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워킹맘'이라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여주는 회사라면 충분히 강점으로 부각할 수 있는 조건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원활하기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능력이 요구되는가. 


여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기 위한 시간관리 능력, 남편과 적절하게 가사와 육아를 분배하기 위한 협상과 설득 능력, 직장에서 뿐 아니라 아이 친구들의 엄마 및 보육기관의 선생님들과도 원활하게 소통하기 위한 상황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능력,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와 교감하기 위한 공감 능력 등등등... 이 모든 것은 여성이자 워킹맘이라서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여자이고 엄마니까 당연히 갖추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삶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내가 얼마나 인격적으로 성숙해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이런 점들이 업무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면접의 마무리에 혹시나 '조직생활의 목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이 대답을 빼놓지 않았다.


"저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 직원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난 리더가 아니라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삶을 살면서도 원활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저의 후배들이 보았을 때 '저 선배처럼 살 수 있다면 참 괜찮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하게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해외 근무도 가능하십니까?"

해외에 공장이 있는 제조회사에서의 최종면접에 임원이 질문했다. 그 회사는 경력직은 거의 뽑지 않는 회사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해외근무 가능 여부가 필수인 회사였지만 경력직에게까지 설마 해외근무를 필수로 요구할까 싶어서 우선 면접에 참석하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질문이 던져진 것이다.


"가정 사정상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직 눈 앞에 벌어진 일은 아니니 우선 가능하다고 대답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탈락을 각오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임을 밝혔다. 내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부부나 가족이 떨어져서 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해외 근무를 하게 될 경우 연로하신 부모님도 모시고 가야 하는데 딸의 인생을 위해 부모님의 인생을 더 이상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없었다.


면접에서 모든 것에 Yes라고 대답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신입사원의 경우 패기나 열정을 보기 위한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경력직 면접은 실제로 입사 후의 상황을 결정짓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섣불리 Yes라고 대답했을 경우 이직에 성공하더라도 추후에 불만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회사에 추천한 헤드헌터는 탈락의 결과를 전해주었다. 이유는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 해외근무는 필수 자격요건인데 회사의 인사정책에 따르지 못한다는 답변'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항이 필수요건이라면 미리 채용을 진행할 때 고지를 했어야 하는데, 사전에 밝히지 않은 회사의 채용방식으로 인해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Yes 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직은 단순히 좋은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나의 경력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나의 역량과 장점은 무엇인지 새로운 직장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말과 글로 표현하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좋은 기회이다. 특히 나에게 이직은 엄마이자 직장인으로서의 두 가지 삶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만들 것인가를 더욱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와 직장인' 이 두 가지 역할 모두가 나에게는 소중하다. 직장인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엄마인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고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직장인의 생활에 집중하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두 역할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의 삶을 놓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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