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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Aug 05. 2019

퇴사 후 다시 찾아간 전직장

'점심 약속 있나? 같이 식사나 하자.'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팀장님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 날 종로의 한 식당에서 오랜만에 팀장님과 마주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그래, 이직하려는 회사는 어떤 곳이야?"


복직 후 두 번째 이직으로 면접 절차를 모두 통과한 뒤 최종 합격까지 레퍼런스 체크(평판조회) 단계만 남겨놓고 있었다. 헤드헌터를 통한 공식적인 레퍼런스 체크로 해당 헤드헌터가 나에게 동의를 구하며 레퍼리를 선정해 달라는 연락을 했었다. 그 팀장님은 내가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팀장으로 모신 분들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함께 일한 분이었기에 레퍼리 선정 1순위였다. 오전에 팀장님께 연락드려 레퍼리를 해 달라는 요청을 드렸고 팀장님은 선뜻 응해주시며 연락한 김에 함께 점심을 하자고 부르신 것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팀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지, 이직하려는 회사는 어떤 곳이며 어떤 업무를 하게 되는지, 이전 직장은 요즘 어떤 분위기인지 등등... 같은 소속 팀장님으로 모실 때는 잘하지 못했던 회사와 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직을 하면서 느꼈던 것 등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팀장님께서 말했다.


"네가 이전에 같이 일할 때는 그 회사의 분위기나 그런 것들이 너에게 맞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너는 정말 일 하나는 기똥차게 잘하는 직원이었다. 이제 네가 너의 실력에 맞게 잘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참 보기 좋고 뿌듯하구나."


레퍼런스 체크는 순조롭게 통과됐고 연봉협상 이후 입사일도 결정됐다. 입사일이 결정되고 일주일 후 이전 직장에 들러 팀장님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커피를 샀다. 팀장님은 나의 나름 성공적인(?) 이직을 축하하며 이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리고 몇 년 사이에 새로 입사해서 나를 잘 모르는 팀원들에게까지 내 소식을 알려주었다.


사실 나는 그 회사에 있을 당시 그 팀장님에게 서운한 부분이 참 많았고 몇 차례 부딪히기도 했다.

임신 기간에 승진 누락을 했었고 팀장님은 어떤 위로와 격려의 말도 해 주지 않았었다. 다만 회사가 추구하는 조직문화에 맞춰 나가기 위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뿐이다. 재직 중인 당시에는 서운하고 분한 감정으로 가득해서 이직을 하게 되면 다시는 이전 직장을 찾아가거나 전 팀장과 연락할 일은 없을 거라며 이를 갈았었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직장 생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으니 지금까지 나의 행동이나 회사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회사와 내가 어떤 부분에서 맞지 않았는지, 팀장님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등... 몇 년 간의 직장생활을 천천히 복기해 보니 마음속에 있던 여러 감정들과 원망이 하나씩 정리됐다.


육아휴직이 끝난 후 이직을 하면서 이전 직장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고 팀장님과 동료들은 앞으로의 길을 응원해주었다. 팀장님은 팀원을 한 명 떠나보내게 되어 아쉬워했지만 항상 팀원들의 성장을 독려하고 지원해주던 분이셨기에 나의 이직을 응원하고 축하해주셨다.





사실 팀장님께 레퍼리를 해 주신 것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 인사만 드리면 됐지 몇 해 전에 퇴사했던 직장에 굳이 다시 찾아가 인사를 드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가 그 팀장님의 위신(?)을 세워주고 싶었다. 몇 해 전에 떠난 팀원이라도 이렇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것을 다른 팀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공채 중심의 회사에서 역시나 나처럼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팀의 입지를 확실하게 다지기 위해 애썼던 팀장님께 회사생활의 작은 보람을 안겨드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퇴사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지나고 나면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다. 함께 일하면서 쌓아왔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느새 많이 희석됐고,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내가 좀 더 단단해지고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주었던 경험으로 여기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상황에서 원치 않는 부딪힘이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대부분의 상황과 사람들의 행동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되고 정리가 된다. 그런 부분에서 나에게 이직이란 나에게 생각하는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이전 직장에 대한 힘들었던 기억도,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들도 모두 나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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