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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Mar 04. 2020

백수 딸과 일하는 엄마

코로나로 인해 2주간 재택근무 중

"엄마~ 나랑 인형 놀이하자!!"


방에서 나온 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소리친다. 나는 이제 막 30분간의 화상 미팅을 끝내고 나온 참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하게 늘어난 지난주부터 회사는 재택근무를 선포했다. 

사실 굉장히 간절하게 전사 재택근무가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매일 왕복 3시간 동안 만원버스, 콩나물시루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쌓이는 피로감도 무시할 수 없었고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전염 가능성에 대한 불안캄도 컸다.


내가 지금가지 다녔던 회사 중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회사는 처음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10여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작년까지 근무했던 회사는 호텔을 운영하는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였기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지금의 회사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자료를 옮겨야 할 필요도 없고 재택근무를 공지하면서 VPN도 자동으로 신청돼서 따로 거쳐야 할 프로세스가 없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노트북만 챙겨서 집으로 퇴근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참 기분이 마냥 좋기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재택근무 첫날.

아침에 아이와 함께 느지막이 일어나서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업무 시작시간이 됐다. 시업 시간에 맞춰 팀원 6명과 화상 미팅으로 하루 업무에 대해서 간단히 공유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물론 생각만큼 순조롭게 업무를 진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국의 어린이집이 휴원에 들어가면서 아이는 집에 있게 됐다. 올해 5세가 된 딸은 지금까지 가정어린이집에 다녔는데 휴원이 시작되기 전날 어린이집에서 부랴부랴 5세 아이들의 졸업식을 했다. 코로나로 등원한 아이들도 많지 않아서 겨우 같은 반 친구들 4명과 함께 찍은 사진, 졸업장과 함께 아이들 1년을 보낸 가정어린이집과 작별했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어린이집 소속이 아닌 것이다. 3월 2일에 예정되어 있던 다른 어린이집으로의 등원 역시 휴원으로 입학식이 미뤄지는 바람에 딸은 완벽한 "백수"가 되었다.


반면에 엄마는 집에 있지만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엄마가 컴퓨터를 켜고 식탁에 앉으면 (집에는 당연히 어른들을 위한 책상이 없다) 딸은 자기도 일을 하겠다면서 뽀로로 컴퓨터를 가지고 와서 옆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뽀로로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것도 잠시, 이내 심심해졌는지 엄마의 마우스를 뺏어가고 엄마 노트북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콕콕 만지면서 방해공작에 들어간다. 


보다 못한 외할머니가 방해 선수를 퇴장시키기 위해서 바깥으로 나들이를 제안하지만 모처럼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딸은 엄마랑 같이 나가겠다면서 떼를 쓰기 일쑤다. 결국 엄마는 마음이 약해져서 노트북을 덮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코로나로 인해서 키즈카페 같은 실내는 당연히 갈 수 없고 그나마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집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나 킥보드를 한바탕 타게 해 주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들어와서도 인형놀이, 블록놀이, 스티커 붙이기, 보드게임, 색칠놀이, 동화책 읽기 등등... 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외할머니가 집에 함께 있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집에 있는 한 딸은 외할머니보다는 엄마와 함께 놀기를 바란다. 겨우겨우 하루 세 끼 밥 먹을 시간 동안만 외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그 틈에 엄마는 밀린 업무를 하거나 화상 미팅을 진행한다. 화상 미팅이 끝나고 방에서 나오면 또다시 시작되는 딸의 부름.


엄마~ 나랑 인형 놀이하자!




이런 패턴이 계속되다 보니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사무실에서는 하루 동안 집중하면 마무리될 일이 재택근무 중에는 3일씩 걸렸고 딸과 놀아주면서도 혹시나 메신저나 급하게 회신해야 하는 메일이 오지는 않는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취소되거나 연기된 업무 일정이 많아서 급하게 해야 할 업무도 많지 않았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한 불안감과 불편함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백수 딸은 엄마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다. 엄마가 많이 놀아주지 않다고 투정을 부리다가도 엄마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조물조물, 토닥토닥 해 주기도 하고 밤에는 "사랑해"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며 양쪽 볼에 뽀뽀를 해준다.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것은 엄마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딸과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평소에는 주말을 맞으면 평일 동안 함께 놀아주지 못한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문화센터다 키즈카페다 체험관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이렇게 하루의 대부분의 집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딸이 매일매일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매일 밤 이어지는 딸의 달콤한 귓속말과 사랑고백은 엄마의 모든 걱정과 고단함을 잊어버리게 하는 신비한 묘약이었다.


생애 첫 재택근무는 일의 효율성만 따져봤을 때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만족도를 놓고 보면 10점 만점에 8점을 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사람이 많은 곳을 오가면서 있을 수 있는 코로나 감염의 가능성도 낮출 수 있고 복잡하고 먼 출퇴근을 생략해서 체력을 더 비축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딸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이토록 행복해하니까. 


"엄마, 내일도 나랑 놀아줄 거야?"

까만 눈동자를 빛내면서 말하는 딸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는 딸이 잠들고 난 후 결국 '재택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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