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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Apr 06. 2020

어떤 뒷모습으로 기억될까

퇴사하는 사람의 예의란 것은...

바람처럼 사라진 직원


전 직장에서 같은 팀에서 일하던 A대리가 바람처럼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업무를 진행하다가 팀장과 한바탕 언쟁을 벌이고 난 후 마치 바람이라도 쐬러 가듯이 재킷을 입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더니 그 이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연락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무단 퇴사를 한 A대리가 똥 싸듯 남겨놓은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팀원 전원이 한동안 야근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2년 넘게 그 팀에서 일했던 A대리가 담당했던 업무는 전사 임직원의 급여를 계산하여 지급하는 일이었다. 연말정산 금액까지 반영된 급여가 당장 지급되어야 하는데 전 직원이 월급을 못 받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출산휴가 중인 직원까지 호출됐고 다행히 직원들이 월급을 못 받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삼고초려하셔야죠


이직을 하고 난 후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퇴근길에 전 직장에서 팀장으로 모셨던 B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팀장 : 아직도 그 회사 다니고 있어?
나 : 네, 이제 대충 적응하고 바쁘게 일하는 중입니다.
팀장 : 그래? 그냥 그만두고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건 어때?
나: 술 석 잔은 사주셔야죠. 삼고초려 아시죠?
팀장 : 네가 그렇게 싫어하던 임원 잘렸다는 소식 들었지? 내가 좋은 임원 뽑을 테니까 생각해봐라.
나 : 네, 팀장님. 꼭 좋은 임원 뽑아주세요.


B팀장의 술 한잔 걸친 목소리에 나도 가볍게 농담 식으로 대답했다. 내가 이직하는데 큰 기여(?)를 했던 모 임원이 비리가 발각돼 하루아침에 목이 달아났다는 소식은 이미 함께 일했던 동료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그 임원이 떠났으니 이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떻냐는 제안을 가볍게 던져보는 팀장과 몇 가지 근황 토크를 한 후에 통화를 마무리했다.


K팀장과 함께 일한 기간은 고작 5개월 남짓. 하지만 내가 퇴사를 할 때 지금까지 함께 일했던 어떤 팀장보다 많이 아쉬워하고 좀 더 버텨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이었다. (5개월만 같이 일해서 나의 단점을 볼 겨를이 없어 더 그런걸지도?) 그 회사를 떠난 이유가 단지 그 임원으로 인한 것 하나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B팀장의 전화 한 통화에 내가 회사 생활을 나쁘게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름 자부심(?)의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회사를 떠나는 뒷모습은 어떻게 기억돼야 하는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더라도 퇴사를 할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심리학 용어 중 '최신 효과(Recency effect )'라는 것이 있다. 가장 최근에 제시된 정보를 잘 기억한다는 뜻으로 첫인상의 친숙도가 낮을수록 최신 효과가 잘 나타난다고 한다. 즉,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라면 첫인상보다 최근에 접한 모습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퇴사하기 전에는 이제 곧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 업무 정리나 인수인계 등에 소홀하기 쉬운데 그럴 경우 동료들에게 무책임한 이미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동료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나의 이미지는 앞으로의 직장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전 직장 동료에게 이직 시 평판조회 연락이 갈 수도 있고, 어느 날 나의 고객이 될 수도 있는 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때문에 퇴사나 이직을 할 때 아무리 전 직장이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중요하다. 


퇴사할 때 인수인계를 마무리했다고 해서 전 직장, 동료들과의 인연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후임에게 업무를 잘 설명하고 정리해줬다고 하더라도 업무란 것인 한 달 이내 주기로 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분기/반기/년 단위를 주기로 반복되는 업무도 있다.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전 직장 동료나 후임자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이것이 지금의 내 생활을 방해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라면 받아주는 것이 떠난 사람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진 직원의 연락


A대리의 '무단 퇴사' 소식을 들은 지 2주 뒤, 갑자기 A대리에게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매니저님 다니는 회사에 Payroll 업무 담당자 뽑는 것 같던데 거기 분위기 어때요? 저 지원하면 가능성 좀 있을까요?"


A대리는 우리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다. 내가 전 직장 동료들과 연락하면서 이미 A대리의 퇴사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A대리의 연락이 반갑기는커녕 당혹스럽기만 했다.


"아, 거기 외국계 회사 경력 있고 영어 좀 잘하는 분 선호하는 것으로 아는데... A대리님 경력이랑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저 대답이 100% 진실은 아니지만, A대리와 동료로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마음이었다. A대리가 해당 채용공고에 지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레퍼런스 체크가 들어오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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