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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나 Mar 30. 2020

혼밥을 하기로 했다

시간 거지 워킹맘이 나를 지키는 방법

이번 달부터 나의 구글 캘린더에는 새로운 고정 스케줄이 생겼다.


매주 2회, 혼밥 시간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12:30 ~ 13:30. 이 시간은 나를 위한 혼밥 시간이다.


매주 팀원들의 일정을 체크하던 팀장은 매주 2회 비공개 일정이 추가된 내 일정표를 보고 물었다.

"새로운 고정 일정이 생겼네요?"

우리 팀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보통 함께 식사를 하는데, 매주 2회 점심시간마다 고정 스케줄이 생긴 것을 보고 누군가와 매주 점심을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생각 한 모양이다. 팀원들의 사내 네트워킹까지 신경 쓰고 있는 팀장에게는 예의 주시해야 할 정보였다.


"네, 혼밥 하려고 합니다. 점심시간을 개인 시간으로 활용해 보려고요."


팀장의 질문에 대답한 나는 비공개로 했던 일정을 팀원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공개로 변경해 두었다. 나만의 시간을 침범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다.


팀장은 팀원들이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많아야 원활하게 팀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팀의 분위기에 내가 가장 먼저 점심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고 선언했다. 90년대 생 팀원들도 하지 못하던 그 일을 내일모레면 마흔이 되는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다.




저는 시간 거지라..


회사를 다니면서 종종 난감한 부탁을 거절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워킹맘 티를 내지 않고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부터 업무 외 시간을 투자해서 해야 할 일을 요청받는 경우 꼭 필요한 일이라면  가벼운 농담처럼 '시간 거지'라는 말을 사용해 웃으며 거절한다.


농담이 아니라 난 정말 시간 거지다. '혼자만의 시간' 거지.


매일 3시간을 출퇴근에 쓴다. 회사에서는 가능하면 칼퇴를 하기 위해서 근무시간 중에 화장실 가는 것도 종종 잊어가며 일을 한다. 항상 시간에 쫓기다 보니 걸음도 빨라져서 팀에서 내 별명은 "경보 선수"이다. 중학교 시절에 학생 경보 대회 지역 대표였다는 농담이 먹힐 정도다. 업무 시간조차 부족한데 회사에서 반 강제로 하는 독서 스터디를 하느라 매달 책도 일정 분량을 읽어야 한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육아가 기다리고 있다. 애를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좀 보낼라치면 어느새 나도 함께 잠들어버리기 일쑤였다. 


결혼 전에는 자취를 10년 넘게 해서 퇴근 이후 항상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내가 결혼하고 시간 거지가 돼버렸다. 고독을 꽤나 즐겼던 나였기에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삶의 활력을 점차 잃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는 함께하는 팀 점심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팀장에게 떳떳하게 혼밥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 혼밥이라고 해도 정말로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은 샌드위치와 같은 것으로 간단히 때우고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하거나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일주일에 두 번 혼밥을 하니 놀랍게도 삶의 질이 상당히 올라갔다. 


시간 거지인 나를 우울하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운동시간이 부족해서인지 피로감을 자주 느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조용히 사색할 시간이 필요한데 바쁜 일상 속에서 그럴만한 시간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2회의 혼밥으로 확보된 시간이 이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주었다.


혼자만의 산책과 글 쓰기는 나를 유지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브런치에 옮기는 것. 그것은 단순히 걷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다. 나의 삶과 아이의 삶, 그리고 내 가족의 삶의 가치의 무게를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저울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워킹맘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산책을 통한 사색과 글쓰기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요즘은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시기라서 산책하는 시간이 더욱 즐겁다. 분홍, 노랑, 아이보리색 봄꽃을 보면서 부드러운 바람과 정오 무렵의 따사로운 햇살 속을 걷다 보면 찌뿌둥했던 몸도 풀리고 컨디션도 훨씬 좋아진다. 오후를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얻어 가뿐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일주일에 두 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줄이야.

앞으로도 시간 거지 워킹맘은 꾸준히 혼밥을 핑계로 일상과의 접촉을 잠시 끊고 나만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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