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긴긴밤’은 당연히 어린이들이 주로 읽는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 ‘노든’은 ‘밤보다 길고 어두운 암흑을 지나 찾아온 긴 밤과, 그리고 긴긴밤’을 보낸다. 우리나라의 어린이 대부분이 아직 경험한 적도, 이 책을 손에 쥘 기회가 주어진 어린이라면 앞으로 경험할 것 같지도 않은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작품의 심사평에 등장하는 ‘사는 것보다 죽기가 더 쉬운 세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독자는 구김살 없이 자란 어린이일 수 없다. 세상 풍파 다 겪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환갑의 아저씨나 아줌마, 혹은 너무 많은 상처로 인해 노쇠한 영혼을 갖게 된 청년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해맑은 어린이의 손에 쥐어주는 이유는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치쿠와 윔보, 그리고 노든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코끼리 무리 사이에서 처음 삶을 마주한 흰바위코뿔소 노든은 무리를 떠나 진정한 나를 찾아 나선다. 자신과 같은 흰바위코뿔소를 만나 딸을 얻게 되지만 밀렵꾼에 의해 아내와 딸을 모두 잃고 동물원으로 보내진다. 동물원에서 만난 또 다른 동족 ‘앙가부’마저 세상을 떠나자, 노든은 세상에 동족이라곤 없는 단 한 마리의 흰바위코뿔소가 된다.
인간은 전쟁을 벌였다. 동물원은 폭격당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던져진 노든에게 펭귄 ‘치쿠’가 나타난다. 치쿠는 연인 윔보가 목숨 바쳐 지켜낸 작은 알 하나를 양동이에 담아 나왔다. 노든과 치쿠는 썩 괜찮은 길동무가 됐다. 둘은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걸 걸고 바다로 향했다. 삶의 의미를 잃고 헤매던 노든은 바다로 향하는 치쿠의 여정에 동참한다. 이후의 삶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치쿠가 죽고 알에서 갈색 깃털을 가진 펭귄이 태어난다. 노든은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했다. 바다에 도달하면 또다시 홀로 긴긴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존재로서 어린 펭귄에게 이미 많은 의미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냈다는 것을 노든은 깨달았을까?
어린이의 손에 이 책을 쥐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사랑과 연대, 생명의 존엄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의 불씨이기 때문이다. 치쿠와 윔보, 노든이 작은 알 하나에 모든 걸 걸었듯 어린이들에게 이 작은 이야기 하나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