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재 Sep 20. 2023

이제 성장통 말고 선택통

5번 레인

 철봉에 매달려 거꾸로 뒤집힌 세상을 바라보는 게 즐거웠던 그 시절, 발목이 욱신거려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성장통이라며 징징대는 나를 달래주곤 했다. 육체의 성장이 그렇듯 정신적인 성숙에도 고통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유년 시절의 성장통을 지나 사춘기의 방황, 이십 대의 표류를 거쳐 삼십 대가 되었다. 수많은 경험과 고난을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성장통은 여전했다. 삼십 대에는 삼십 대만의 망설임과 도전들이 놓여 있었다.  

   

 호각소리가 울린 이후에도 출발선에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바라본다. 지난한 시간을 고군분투하며 싸워왔지만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히고 깨진 게 대부분이었다. ‘나는 과연 투쟁할 대상을 스스로 선택해 왔는가’, ‘정정당당하게 목적한 바를 쟁취했는가’와 같은 물음들이 일상을 삼키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지금의 나는 발생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며 만들어진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도, 망상의 한 종류란 것도 알지만 정말 별난 일이 많이도 일어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 별난 문제들은 나를 기르고 성장시켰다. 그것은 문제들이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성장과 고통은 늘 단짝처럼 붙어 다닌다. 하지만 어떤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주도적으로 선택한 사람과 갑자기 등장한 고통을 극복하는데 급급했던 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스스로 감내할 고통을 선택한 사람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극복하는 게 목적이었던 사람이 책임감을 갖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뜬금없지만 이 글은 책을 읽고 나서 쓰는 독후감이다. 수영하는 초등학생들이 잔뜩 나오는 ‘5번 레인’이라는 소설인데, 학원 수업을 위해 읽었다. 작품 속 아이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온 힘을 다해 각자의 결승점으로 나아간다. ‘잘 이기는 것만큼 중요한 잘지는 법’, ‘순수한 열망’, ‘무언가에 온 힘을 다해보는 경험’, ‘저마다의 빛과 그림자를 통과하다’, ‘자신의 터치패드에 정정당당하게 도달하다’와 같은 핵심어로 이 책은 요약된다. 무엇보다 ‘5번 레인’은 자신의 길을 직접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자 고유한 터치패드를 치열하게 찾아내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어린아이들이 내겐 알에서 나온 신화 속 인물들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 심리적 거리만큼 치열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성장통 말고 ‘선택통’을 겪고 있는 녀석이 있는지 샅샅이 수색해 볼 계획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라는 희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