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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Feb 23. 2023

청소에서 배우다

미루지 않기

미루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룬다고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안 해도 되는 일이라면, 미루다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겠지요. 


학창 시절 벼락치기가 떠오릅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고, 놀고 싶어서 시험공부는 다음 날로 미루죠. 결국 시험 전 며칠 동안 밤을 새우고, 잠을 못 자며 공부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노력을 기욱이게 됩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마지못해 하게 되는 일종의 '노동'과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두 달 만에 다시 잡았습니다. 나무젓가락, 휴지, 분무기, 물티슈, 비닐봉지 마지막으로 폰. 안방으로 갔어요. 노래 앱을 켜서 신나는 노래를 검색합니다.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물을 뿌립니다. 방 안에서 해도 되지만 저희 집은 안방에 킹, 라지 킹 사이즈의 침대가 있어 안방의 창문 자리가 좁아요. 손 더러워지지 않게 하기 위해 또 틈새도 닦을 수 있도록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창틀의 먼지를 닦아냅니다. 한 쪽을 다 닦고 다른 쪽에도 분무했어요. 덕분에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저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코가 덜 간지러웠네요. 


두 달 만에 닦지만 많이 더럽지는 않았습니다. 12월 전에 좀 더 자주 닦아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침대가 방에 들어올 때도 닦아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지나칠 수는 없어요. 생각보다 먼지가 없다는 말이지 전혀 없지는 않았으니까요. 두 시간 연속으로 재생되는 노래를 선택해 지금 몇 번째 곡인지, 시간은 어느 정도 지났는지 파악은 좀 어려웠네요. 


베란다에 있으니까 베란다 창틀도 보입니다. 비오는 날에 베란다에 있는 호스를 이용해 청소할 때가 있는데요, 이날은 비도 오지 않아 조금 고민했어요. 아랫집에 물이 떨어지는 일도 신경쓰이고 날씨가 추우니 물 뿌리는 일 대신 닦기로 합니다. 확실히 바깥쪽에 있어 창틀이 새까맣더라고요. 나무젓가락 놓치지 않기 위해 손에 힘 딱 주고 잘 잡고 있었습니다. 음악이 없었다면 지루할 뻔 했네요. 손은 양 옆으로 왔다갔다 하고요, 입은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습니다. 


제일 큰 창문이 있는 거실에 왔어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요. 할 수 있는데까지는 최선을 다합니다. 안쪽 바깥쪽 다 깨끗하게 닦아냈어요. 거실 창가 옆에 안마의자를 놓아두었는데요 그래서 앉아서 할 수는 없었어요. 허리를 숙여있으니 아프기도 하고요, 빨리 끝내고 싶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론 안마의자에 앉고 싶은 마음도 있었답니다.


마무리가 되어가니 좀 더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넓은 창이 바로 옆에 있지만 앉아서 할 수는 있으니까요. 안방에서는 쪼그려서, 바로 옆에서는 허리를 구부려서 닦았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앉아서 청소할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 먼지, 작은 장난감이 여러 번 나왔네요. 청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재방에 가려다 펜트리로 들어갔어요. 다행히 창문 앞에 의자 하나가 놓여져 있네요. 펜트리에는 짐이 많이 있는데요, 그래서 반대쪽 창문을 열어 청소를 할수가 없었어요. 빨리 짐을 줄여서 이쪽도 닦자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고요.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재방에 왔어요. 창문 앞에 책상과 전선이 있는 곳이라 좀 더 신경쓰기로 했어요. 죽은 파리도 보였네요. 한쪽 다 닦고 일어나려다 반대쪽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아 맞다, 원래 열리는 문이었지.' 혼자 피식 웃습니다. 지금껏 그랬듯 왔다갔다 하며 하얀 창틀로 바꿔주었어요. 


끝입니다. 놀이방에 도착했어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신이 나네요. 노래를 더 크게 따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비닐에 검은 휴지만 잔뜩있네요. 휴대폰 시계를 보았습니다. 여섯 군데 청소하는데 60분 걸렸어요. 12월 전에는 베란다 청소할 때 닦고, 안마의자의 먼지 닦으며 그리고 책장을 닦아내며 청소를 했어요. 책상 정리할 때도 닦으니 이렇게 검은 휴지를 잔뜩 보는 일은 오랜만인 거 같아요.


한 번에 여섯 군데 청소를 하고 나니 힘도 들도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미리하고, 조금씩 나눠하고, 할 때 같이 하려고 하는데 12월 말부터는 바빠서 집안일을 거의 손놓게 되었어요. 꼭 필수인 청소기 밀기와 닦기, 빨래 정리, 식사 위주로만 하고 있으니 조금씩 나눠서, 할 때 같이 할 그런 시간이 없었네요. 한 번에 하면 힘이 드는데 나눠서 하면 금새 끝나죠. 다시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집안일을 몰아서 하지 않으려 합니다. 새로운 일이 들어와, 급한 일을 쳐낸다고 안 할 일을 집안일로 정해버렸어요. 돌아오고 나서 보니 엉망인 집을 다시 손 대려니 쉽지가 않네요.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은 몰아서 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집안일은 생활 공간이기에 미루면 안 되었어요. 조금씩이라도 일정 부분은 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한 제 방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양 줄이기'입니다.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죠. 추가된 일이 '일'과 관련이 된다면 일 항목에서 우선 순위를 정해 1순위부터 먼저 해나가는 것이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자연스레 하위권에 있는 건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다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일을 할지 말지를 정하고 그렇게 실행하면 됩니다. 


둘째, '시간 줄이기'입니다. 양을 줄여 하고 있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면 다른 일의 시간을 줄이는 거예요. 당분간은 그 일의 최소한의 양만 하는 겁니다. 저는 이럴 때는 돈 지출도 확실히 많아져요. 음식을 포장하거나 배달시키는 날이 많아지거든요. 요리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대신 제품을 사는 것이죠. 포장 음식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만 하며 주방에서의 시간을 줄여요. 


셋째, '마감기한 정하기'입니다. 추가된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정해놓고 시작하면 일을 질질 끌지 않아요. 저는 이번에 두 달의 시간이 걸렸는데요, 처음부터 마감을 정해 놓았다면 정리와 청소해야 하는 양 자체가 지금보다는 적겠죠. 그럼 시간도 덜 걸릴테고요. 


이 세 가지 모두 이전에 해왔던 방법이긴한데 이번에는 좀 못 지킨 거 같아요. 몸의 이상 반응이 없었다면 저는 아직도 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움직인만큼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안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앞으로는 일이 추가되면 뭐부터 뺄 것인지, 시간 조정이 필요한지, 데드라인 딱 정해놓고 시작해야겠어요. 그게 덜 힘드는 일이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미루지 않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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