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입니다. 뱃속에 남자아이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지요. 저보다 먼저 아이를 키우고 있던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키우고 나면 소용없다. 자기 여자한테 가고 그 여자만 본다. 그러니 애 낳은 직후부터 남의 남자라 생각하고 키워. 그래야 네가 덜 속상해."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이기도 했죠.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게 사는 게 속은 편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제사를 지낼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대를 이어갈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녀에게 기대지 말고, 바라지 말고 남인 듯 살면 우리 부부,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 같았죠. 옆에 있으면 봐줘야 하고, 음식도 챙겨줘야 합니다. 물론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가 바빠서 안 그런 집도 있긴 했지만 제가 본 많은 집은 부모가 늘 자식 걱정을 했고, 자식을 위해서 희생할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 어차피 자기 여자 찾아갈 거라면 나타날 때까지만 내가 키우는 거야!' 마음을 비우고 육아를 시작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였습니다. 나이로는 세 살이었는데요, 피부가 하얀 한 여자아이를 유독 좋아했다고 합니다. 안기도 하고 옆에 붙어 있다고 했어요. 그때 당시 첫째는 아직 말을 못 할 때였는데 그 여자아이는 의사소통이 가능했어요. 그 아이와 대화하기 위해서 말문이 트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놀이터에서는 그 여자친구만 따라다니더라고요. 하지만 이사를 가게 되어 육 개월 만에 아이의 첫사랑은 끝나게 되었어요.
네 살이 되었습니다. 전년도에 같은 반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아이가 있어 눈에 안 들어왔나 봅니다. 이번에도 피부가 하얀 아이, 셋째 딸입니다. 세 살일 때, 얼굴을 확 긁어 제가 볼 때마다 미안한 아이였어요. 무조건 따라다니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어요. 역할놀이도 많이 했고요.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며 남자아이와 장군놀이를 했었어요. 셋째 딸인 그 아이와 노는 시간은 줄었습니다. 학기 중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다닌 지 3주 정도 되었을 때, 차 타고 오는 길에 "엄마, 나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말로 저를 놀라게 해 주었지요. 여섯 살 때까지 짝사랑을 했습니다. 야외 나갈 때 짝꿍이 되어 손잡고 가는 날을 좋아했고요, 적극적으로 같이 놀지는 않았지만 중간중간 물어보면 좋아한다고 했어요.
일곱 살 때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여자아이에게 장난을 많이 쳤어요. 처음 봤을 때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치원에 있는 짝사랑 그녀와 너무나 닮은 이미지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취향이랄까요. 외모를 알겠다고 할 정도였어요. 놀이터에서 만나면 계속 달리기만 합니다. 여자아이는 도망가고 첫째는 따라가고. 체력이 좋은 여자 친구였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저희가 이사를 오면서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었네요.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이는 축구와 사랑에 빠졌어요. 여자아이는 이야기만 꺼내도 싫어하더라고요. 연애는 해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아이에 대해서 물어보면 고개를 세차게 젓더라고요.
어제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었어요. 차를 타고 오는데 동생과 저에게 비밀이라며 꼭 지켜달라고 하더군요. 아빠에게도 비밀로 해야 되냐고 물으니 우리 가족만 알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안심시키고 들은 이야기의 요점은, 지금 같은 반인 여자친구를 좋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학년 2학기 때 전학 온 친구였는데 그때는 다른 반이었다고 해요.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고, 굳이 또 당사자에게 가서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도 말했다고 해요.
"나도 너 좋아해."
"(입을 틀어막고, 진짜 그러냐는 듯한 커진 눈인 상태로) 정말?"이라고 여자아이가 답했다고 하네요.
여자라면 질색하던 아들이었는데요, 룸미러로 아이를 쳐다봤습니다. 입은 살짝 벌어진 채로요. 목소리는 이야기를 듣기 전보다 한 톤 올라갔습니다. 눈이 마주쳤어요. 아이가 먼저 웃더군요. 제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꼬리는 내려왔습니다. 그때부터 폭풍 질문을 했어요.
"그 여자친구가 너를 좋아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지금은 같은 반이야?"
"1학년은 다른 반이었어?"
"영어나 방과 후에서 만난 적 있어?"
"이제 개학하고 일주일 정도 됐는데 2학년 돼서 좋아한 친구야?"
"너는 그 친구를 어디서 보고 알게 된 거야?"
"그 친구도 쌍꺼풀이 없어?"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해?"
"그 친구가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래?"
"네가 좋아한다니까 그 여자아이는 뭐래?"
병원에 둘째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이었어요. 가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지요. '치료를 안 할 수 있다면, 그 대답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야 기대하지 말자 그럼 또 힘 빠질 거야' 다행히 치료는 시작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기적으로 검사하다 필요하면 더 자세히 검사하자고 했었죠. 평소보다 삼십 분 정도 더 있었을 뿐인데 첫째 치료만 받고 오는 날과 다르게 몸이 쳐졌을 때였어요.
그런데 아이의 말로 궁금하고 재미있어져요. 원래 남의 사랑 이야기는 더 재미있잖아요. 아이들이 먼저 자고 혼자 다이어리를 쓰고 있었습니다. 메모란에 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어요.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인 첫째뿐만 아니라 딸인 둘째에게도 해요. 혹시나 아이들이 나는 결혼 안 하고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 거야라고 말한다면,
"너는 외국에서 살 거잖아. 레고 만드는 사람이 되려면 미국이 좋을 거야. 둘째는 영국 어때?"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는 엄마의 마음이, 이왕이면 더 큰 세상에서 경험해 보라는 엄마의 욕심이 담겨 있습니다. 저도 말하면서 알고 있었어요. 어제는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면 애인, 배우자를 만났다고 해서 부모에게서 독립할 게 아니라 공부나 일로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일종의 엄마 마음 비우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죠. 아이가 멀리 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더 집착하지 않게 되니 차라리 멀리 가버려라는 마음이요. 배우자 만나서 우리 아이들이 아쉽다는 이런 마음이 들기 전에, 내 마음이 상처받기 전에 방어하는 역할이 아니었나. 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아이 말을 듣고 고민해 봅니다.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키워야 할까, 옆에 있어야 할까를요.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 편이 되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남의 남자 이런 게 무슨 소용이고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희는 부모와 자식으로 만난 인연입니다. 부모의 역할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올바른 아이로 독립시키는 일 아닐까요? 부모가 낳았지만 자식이 제 소유물은 아닌걸요. 남의 남자, 출가외인 이런 말 신경 쓰지 말고 부모의 역할에 충실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