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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리따 Mar 21. 2023

조바심을 버리는 쓰기의 힘

마음을 졸이며 보낼 때가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빠른 성과를 내고 싶을 때, 시간은 없는데 할 일이 많을 때가 그러하죠. 또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도 마음이 급합니다. 


특히 육아하며 이런 마음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이들과 외출하는 날입니다. 12시까지 가야 하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11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하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옷 입히고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늘 예정한 시간보다 20분 지나서 겨우 출발하게 됩니다. 도착하면 아이들 있는 집은 그렇더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이야기합니다. 12시까지 가려면 11시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고요. 그런데도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어요. 팔짱을 낀 상태로 아이들을 조용히 쳐다보기도 하고요, 조용하게 이름을 불러 눈 마주치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하는데도 준비하지 않으면 폭발도 하죠. 시간 맞춰 가고 싶은 엄마와 안 그런 아이들 때문에 조바심뿐만 아니라 짜증, 화까지도 납니다. 


오늘은 유치원 가기 전에 아이 병원에 들렀어요. 어젯밤까지만 해도 안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누런 콧물이 나오고 목도 따갑다고 해서 소아과에 갔습니다. 9시에 진료 시작인데요, 아침을 먹은 후 아침마다 하는 한글, 연산 문제집까지만 하고 나섰어요. 9시에 출발했습니다. 도착하니 열 번째더군요. 10시부터는 제가 수업을 듣는 게 있어서 늦지 않으려면 병원에서 9시 30분에 유치원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40분 후에 진료를 봤어요.


문제는 약국입니다. 병원 바로 옆의 약국은 병원에서의 대기만큼이나 기다려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이 많으면 주로 길 건너편으로 가요. 아이들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돌아와도 병원에서 제 앞에 진료 봤던 분들이 아직 약국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길을 건넜습니다. 약 하나가 부족하네요.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보통 10시에 온다고 하니 10분 가까이 기다려야 하네요. 오늘은 제약회사 담당자가 조금 늦게 와서 30분을 기다렸습니다. 


평소였다면 계속 시계를 쳐다봤을 테죠. 아이를 데려다주고 수업이 없었다면 모를까 앞에 한 시간은 못 듣기 때문에 이야기도 했을 거예요. 언제 오는지 확인을 해 달라거나 더 심하면 미리 약이 없다고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오늘, 아이와 놀았습니다. 눈을 보며 이야기를 했고요, 가위바위보 하며 점수 먼저 내기도 했어요. 팔씨름도 하고, 주위에 있는 약을 보며 어떤 약인지 알려줬어요. 


기다리는데 조급하지 않더라고요. '올 때 되면 오겠지'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운전하는데 오늘 내가 급하지 않고 차분했던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저의 '쓰는 행위' 때문에 마음을 졸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글쓰기, 다이어리 쓰기, 필사이죠.


글을 씁니다.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떠올리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보내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읽은 글처럼 살고 싶고요, 쓰는 글처럼 살아야 합니다. 

"약 없다고 미리 이야기해 줘야죠."라고 내뱉으면 서로 감정만 상할 뿐입니다. 약이 빨리 온다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약을 갖다 주는 직원이 오늘 아침에 회의가 잡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을 수도 있고요, 다른 곳이 급해서 해결하고 오는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직원도 오늘의 이동 경로를 미리 계획해 놓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제가 보챈다고 해서 약이 빨리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가게 됩니다. 마음 편해지죠. 


다이어리를 씁니다. 하루를 되돌아보고 나를 칭찬하고, 고칠 점은 반성하고, 수고했다는 글 남기고, 기억나는 사건은 메모합니다. 계획은 10시까지 수업에 도착하는 거였습니다. 다이어리 쓰며 알게 됩니다. 계획대로 하루를 보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내가 그 상황의 통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설사 갖고 있더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 다른 재미있는 일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잡는 게 더 힘듭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외부 요인으로 계획대로 보내지 못하는 일은 빈번합니다. 

그러면 저는 다이어리를 쓰며 생각합니다. 내가 10시까지 수업에 도착할 거였으면, 9시에 집에서 나서는 게 아니라 30분 더 일찍 나섰어야 해. 요즘 아이들 감기 많이 걸린다는 말도 들었으면서 왜 9시에 나간 거지? 할 일은 다녀와서 해도 되잖아. 다음에는 10시까지 수업에 갈 계획이면 더 일찍 나서자. 이렇게 타인이 아니라 '나'의 반성을 하게 됩니다. 다음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피드백해놓은 이 순간으로 남 탓 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려 노력하고 종이에 그대로 따라 적습니다. 사자소학 한 권은 끝냈고 이어서 명심보감 필사하고 있습니다. <<대장경>>책은 내용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데 좋더라고요. 성경 필사도 하고 싶었는데 대장경부터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고전을 필사하면 성현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어요. 부모님께서 해주시면 잔소리인데 고전에서는 새겨들어야 할 말씀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대장경 필사하며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마음을 잡습니다. 이런 마음이 또 나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어요.


쓰는 행위는 이 순간을 집중하고 과거를 돌아보게 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져요. 때로는 위로도 하고요, 힘을 내기도 합니다.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기도 하죠. 이런 여러 가지 경험이 쌓여서 마음이 단단해지고 있어요.

 

글쓰기가 부담이라면, 작가들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시작하기가 두렵다면 일기 쓰기를 추천합니다. 하루의 일과를 나열해도 좋고요, 기억에 남는 일 한두 가지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록해도 괜찮아요. 마지막에 느낀 것, 배운 것, 마음속이나 행동의 변화가 있는 점을 남기시면 더 좋겠네요.

 

다이어리 쓰기는 쓰는 그 행위보다는 피드백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기록만 하면 시간 활용이나 나의 태도 변화도 없습니다. 하루 속에서 인생을 배워갈 수 있으니 쓰실 분들은 시간, 칭찬, 반성 등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필사는 다양합니다. 책을 보고 할 수도 있고요, 명언을 매일 찾아서 필사해도 됩니다. 고전, 사람들의 인생 책을 검색해서 찾아보시면 자신에게 맞는 책이 있어요. 꾸준하게 하고 싶다면 긴 문장보다는 짧아서 매일 할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세 개 모두 시작하기에는 버겁습니다. 저는 다이어리를 쓰다가 글쓰기를 했고 이후 필사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하기 위한, 다스리기 위해서라면 굳이 순서는 상관없다고 봐요. 일단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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