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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다시 Mar 01. 2023

로또의 꿈

눈을 떴다. 25년이 지났다. 직장에 발령받아 돈을 벌었다.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고 육아와 가사, 직장 일을 동시에 했다. 이사를 여러 번 했다. 가족들은 아프고 나았고 또 아프고 나았다. 아이들은 입학과 졸업을 반복했다. 고된 세월이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독립해서 제 둥지로 떠났다. 내 둥지는 텅 비었고, 마음도 비었다. 고독했다. 고독한 이가 가족 밴드에 초대되었다. 오빠가 근황을 전했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을 했고 동시에 특별직으로 취업을 했단다. 오빠를 떠올리면 ‘부자’란 말부터 생각난다. 언니도 소식을 전했다. 교감으로 승진했고 형부도 승진했단다. 언니가 ‘부자’란 말을 듣지 않으면 누가 부자란 말인가. 부부 공무원인 동생네는 말하지 않아도 ‘부자’이다. 몇 년 전 서울에 집을 샀고, 집값은 하늘의 구름까지 닿을 정도로 올랐다.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사에 눈이 뜨였고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앞이 깜깜했다. ‘아, 난 뭘 하고 살았나!’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하느님, 저 부자 되게 해주세요.”

 기도는 했지만 부자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투자해놓은 것도 물려받을 유산도 없었다. 하늘에서 금덩이가 떨어질 리도 없었다. 그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노력이 병행되어야 기도 면목도 선다. 궁리했다. 길이 보였다. 바로 로또!


 꿈을 꿨다. 행운의 ‘똥’꿈이었다. 굵고 기다란 황금변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로또 살 꿈이었다!      


 “오늘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로 체감온도는 영하 24도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 나의 행운을 날씨가 시기했다. 멋진 꿈을 놓쳤다. 몸살기가 있고 날은 추워 로또 사러 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로또집은 너무 멀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딸에게 사다주라고 부탁했다. 딸은 기꺼이 사오겠다고 했으나, 너무 추웠고 로또집을 찾지 못해 그냥 왔다. 토요일이 되었다. 똥꿈의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다. 기회가 또 왔다. 범상치 않은 꿈이었다. 금빛 모래밭에서 큰 조개와 낙지를 긁어모으는 꿈이었다. 오빠가 나와서 찝찝하긴 했지만 보통 꿈이 아니었다.      


 지난 토요일, 25년 지기 직장 동기들을 만났다. 우리는 같은 선에서 출발했다. 다들 고향을 떠나 한 직장에 발령받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지방에서 소박한 삶을 살다 상경한 이들로 무일푼의 스물다섯 살 꿈많은 청춘들이었다. 우린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고 한두 명의 자녀를 낳아서 길렀고, 지금까지 맞벌이로 현직에 있다. 여기까지, 여기까지가 친구들과 나와 같은 점이다.


 우린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나 빼고 다 ‘부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나와 같은 일을 했지만 재테크에 신경을 썼거나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서 부자가 되었다. 반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부자’가 되고픈 불같은 내 마음에 부채가 되어 줬다. 마음이 급했다. 며칠 전 ‘금모래밭 조개 모으는 꿈’을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굳게 다짐했다.     


 모임이 끝났다. 집 방향이 같은 친구와 헤어지자마자 로또집을 찾아 헤맸다. 빙빙 돌아 로또집을 찾았다. 자동으로 다섯 게임의 번호를 받았다. 간절히 기도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부자 되게 해달라 욕심을 부린 적도, 남에게 해코지한 적도 없는 저를, 오히려 가난하게 살면서도 더 가난한 이를 위해 기부했던 저를 갸륵히 여겨주세요. 복을 내려 주세요.’    

 

 로또 추첨시간이 다가왔다. 조바심이 났다. 이번 주 당첨 번호는 ‘13, 20, 24, 32, 36, 45. 보너스 번호는 29.’ 내 번호는 ……. 다섯 게임 중 한 게임에서만 ‘13, 24, 36’ 세 개가 맞았다. (순간, 속으로 별생각이 다 들었지만 부자의 꿈을 위해 긍정적인 생각만 추려냈다.) 5등이었다. 5등은 5천원, 다섯 게임을 더 할 수 있는 선물이 주어졌다.  

   


 우리 부부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다. 남편은 결혼 초기에 직장동료의 말을 듣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망한 뒤로, 재테크를 말하면 화부터 냈다. 나 또한 먹고 살기 바빴다. 오십 년을 살며 부자가 되길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부’는 사회정의를 해치는 ‘악’이라 치부했고 난 부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이랬던 내가 바람이 들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었다. 부자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주고 싶었다.     


 행운을 가져다줄 꿈을 꿀 기회는 많다. ‘똥’꿈은 조바심을 주었고, ‘금모래밭 조개 꿈’은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이젠 마지막 한 방의 꿈이 남았다. 그 꿈은 필시 로또 1등의 행운을 줄 것이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로또 1등 당첨자의 꿈 가운데는 조상 꿈이 39%로 가장 많았으며, 재물 관련 꿈 12%, 돼지꿈 등 행운의 동물이 등장하는 꿈 10%, 물 또는 불이 나오는 꿈 8%, 숫자 꿈 8%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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