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나지 않는다. 퇴근길에 번번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오직 일로 온종일을 보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허무함 그 자체이다. 갑자기 외롭기도 고독이 밀려오기도 한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잡아 머리를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가슴 한편이 텅 빈 느낌이다. 울고 싶다. 엉엉 울고 싶다. 눈물이 주룩주룩 나면 좋겠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속은 흐느껴 우는데 내 밖에선 모든 게 평화롭다. 밑바닥에선 자아가 물속 백조의 발짓처럼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는데 얼굴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평안해 보인다. 중년의 아줌마의 우울증, 캥거루족 초기 증상의 아들, 초고령 아버지의 병환, 성향이 다른 직장 동료들로 인한 스트레스로 요즘 내 심신의 피로도는 만렙을 찍었다. 여럿이 함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노래를 들었는데 친구는 눈물을 훔치며 코를 훌쩍였다. 나야말로 눈물이 줄줄 흘러야 할 처지인데 내 눈은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해 인공누액을 떨어뜨려야 할 판이었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울음다운 울음을 언제 터뜨린 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신혼 초에 만삭의 나는 무심한 남편에게 속상한 적이 많았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는 말이 생각난 어느 날, ‘오늘은 꼭 울어야지’ 맘을 먹었다. 여느 때처럼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다 늦게 들어온 남편을 겨냥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울음소리를 냈다. “엉엉 엉엉!” 있는 힘을 다해 울기 시작해 봤지만 몇 번 흉내 내다 끝내고 말았다. 속은 서운함과 답답함으로 울부짖고 있었지만 울 수 없었다. 남편은 내가 화장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친구들은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면 눈물부터 난다고 했다. 우는 아내를 남편은 안쓰러워하며 소원을 다 들어준다고 했다. 나는 여태까지 남편 앞에서 울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인간에게 있어 눈물은 슬픔, 서러움, 두려움, 불안함, 기쁨 등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될 때 동반되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예민했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을 자주 느끼며 살고 있다. 그런데 내 눈에선 눈물이 나질 않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내 온몸의 수분기가 다 말라버린 것처럼 내 눈은 눈물 한 방울을 짜내지 못하고 있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나 사춘기 시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이 말을 하곤 했다.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다.”
눈물은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하는데 난 마음에서부터 울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우는 아이에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시니까.’ 무의식이 ‘넌 울면 안 돼’라고 시키는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울분이 일고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을 터뜨리고 싶다. 눈물로써 다 풀어내고 싶다. 울고 싶다. 아, 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