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저녁 비가 내린 뒤에 공기의 냄새가 달라지는 이유가 궁금했던 적이 있는가? 그 이유는 나뭇잎, 보도, 흙, 풀 등의 사물을 덮은 물방울들이 그 사물들과 그 표면에 있는 것들을 조금씩 용해시키기 때문이다. 물이 증발하면서 물 분자들은 복잡한 혼합체가 되어 공기 속에 섞이고, 우리는 후각기관을 통해 그것들을 느낀다. 봄날, 더운 여름날, 한겨울의 공기 냄새가 다 다른 이유는 분자들이 서로 다른 온도에서 서로 다른 조합으로 물에 용해되어 공기 중으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의 냄새로 계절을 알 수 있고, 하루 중 어느 때인지 알 수 있다. (책 <힐링스페이스, 문요한> 中에서)
질병의 치료에 방향유를 이용하는 것을 '방향요법 aromatherapy'이라고 한다. 방향요법은 역사적 문헌들과 서양과 동양 모두에서 방향유를 치료에 사용해온 오랜 관습에 기초한 것이다. 최근의 약리학적 연구에서는 이런 방향유 중 일부를 단독으로 쓰거나 다른 방향유와 섞어서 쓰면 특정 박테리아를 제거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책 <힐링스페이스, 문요한> 中에서)
1. 엄마 냄새
"어린 시절에 엄마의 사랑을 언제 느꼈나요?" 신부님의 질문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사랑하는 엄마 사랑의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상처가 많은 분이다. 엄마의 상처는 외할머니로부터 왔다. 엄마는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드셨고 늘 우울하셨다. 엄마 품의 따뜻한 느낌과 말한마디의 기억을 찾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 이거다!'. 한 장면이 머릿 속을 스쳤다. 아파 누워있는 어린 나에게 엄마가 다가온다. 엄마는 한 손바닥을 펴서 내 이마에 대며 여기저기 만져주신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묵주알 돌리시며 기도를 하신다. 음식내 밴 엄마의 부드럽고 찬 손바닥. 그리고 기도소리. 어린이는 금새 단잠에 빠졌고 병도 금방 나았다. 엄마의 냄새, 엄마 손바닥의 촉감, 기도소리는 나를 치유해 주었다.
2. 나무 냄새
-한 여름 태양은 거대한 돋보기가 되어, 도시 거리 지나는 사람마다 촛점을 맞춰 다 태워버릴 것만 같다. 어서 피하자! 숲으로 가자!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로 들어서자마자 절로 눈이 감긴다. 입은 다물고 있는 힘을 다해 코로 냄새를 들이 마신다. 폐와 기관이 팽창되며 내 가슴이 불룩 부풀어진다. 짧은 숨을 내쉬고 다시 힘을 다해 코로 냄새를 빨아들인다. 코가 마신 나무 냄새는 뇌는 물론이고 눈과 심장, 대장과 발가락까지 전달되며 온몸의 세포가 새로 생성된다. 배실대던 세포들도 활력을 찾았다.
-비 온 뒤엔 일부러 숲을 찾을 때가 있다. 나무 냄새가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때 나무는 흙과 함께 콜라보를 이루어 냄새의 효과를 몇 배나 더 나타나게 한다. 비 온 뒤에 나무는 이파리의 초록을 더 발하며 냄새와 함께 안구 세포의 정화까지도 덤으로 준다. 목요일에 비가 온단다. 퇴근 길에 정발산에 들러야겠다.
3. 바다 냄새
목포는 너무 멀다. 목포에 가려면 큰맘을 몇 번이나 먹어야 한다. 큰맘 먹고 목포 친정에 갔다. 한 5시간 걸렸다. 휴, 도착! 엄마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아, 바다 냄새!" 흐린 하늘에 바람 살랑 부는 날, 바람이 목포 앞바다의 짠내를 실어다 주었다. 갯벌 냄새, 미역 냄새, 감태 냄새, 소금 냄새 모두 바다 냄새로 통한다. 그날 바다 냄새는 내 고향이 바닷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내가 바다 사람이었구나. 아, 바다냄새, 고향냄새.
그날 밤 바닷가를 산책하며 내 고향 바다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다. 내 기억 속 앨범에 사진 한 장 추가했다.
4. 러쉬(Lush) 냄새
현대백화점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한 5층 정도 이르면 어떤 향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그 냄새의 근원지는 7층 러쉬(Lush) 매장이다.
러쉬 제품에서 활발하게 풍기는 냄새는 백화점 온 공간을 장악하는데, 그 냄새는 나를 평안으로 이끈다. 아마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 생각한다. 나는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을 좋아하지 않아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공간은 좋아한다. 러쉬에서는 향기 진한 꽃, 맛있는 과일, 달콤한 사탕, 고급 향수 냄새를 섞어놓은 듯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는 매우 진하지만 코를 대고 맡아도 부담스럽지도,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 특히 입욕제에서 냄새가 더 진동하는데, 나는 입욕이 목적이 아니라 방향을 위해 제품을 구입한다. 지금 내 방엔 러쉬 입욕제 세 가지가 냄새를 발하고 있다. 퇴근 후 방에 들어서면 러쉬 냄새가 코와 뇌를 자극하며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6. 햇빛에 바싹 마른 빨래 냄새
빨래지수 높은 날(습도가 높지 않고 바람이 불며 맑은 날씨) 아침에 얼른 세탁기를 돌린다. 세탁 종료음이 울리고 탈수된 빨래를 가지고 베란다로 간다. 쪼그라든 빨래를 털털 털어대며 쫙쫙 편다. 수건이나 속옷 등은 건조대에, 셔츠나 바지 등은 세탁소 옷걸이에 건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연다. 그리고 베란다와 통하는 거실 문 열어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바람이 통해야 빨래가 잘 마르기 때문이다. 직장 근무 중에 잠시 빨래 생각을 하며 행복해 한다. '잘 마르고 있겠네!'
퇴근한다. 빨래에게 향한다. 수건이 '마름 확인 지표물'이다. 수건이 가장 더디 마르기 때문이다. 수건 몇 장 더듬고 까칠한 감촉이 느껴지며 통과된 거다! 다른 빨래는 보나마자 만져보나마다다. 빨래를 걷는다.
거실에 빨래를 쌓아놓고 개기 시작한다. 이때 냄새 맡기는 필수다. 냄새를 꼭 맡아야 한다. 태양이 보내주는 천연 살균제 자외선이 우리집 빨래 속 세균을 말끔히 살균해 놓았음을 냄새로 확인할 수 있다. '햇빛에 바싹 마른 빨래 냄새'는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2021. 0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