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나책장 May 01. 2023

나의 고독하고 서늘한 오두막에서 나는 평화롭다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나는 4년 전 칸쿤의 바닷가에서 파도 속에 나의 바람을 담은 기도를 띄워두고 왔다. 그건 내 생애 가장 간절한 기도였고,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내 기도의 대상이 안전해지는 것. 그건 당시 내 꿈과 미래를 위한 기도보다 간절했고, 간절해서 아름다웠다.

가만히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으면 칸쿤의 파도소리가 들린다.

내 기도의 대상도, 나의 미래도 이 항해의 여정은 안전할 거라는 화답처럼 파도의 출렁임은 평온하고, 나 역시 평화롭다(I am at peace).

최근 나의 키워드는 '배수아'였다. 그녀의 《작별들 순간들》에 너무나 너무나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문학과 기억 속에서 풍경을 길어낸다. 영상을 글로 옮긴 것처럼 섬세하고 밀도 있는 풍경에 아득해진다. 그녀의 글 속에서 나는 그녀가 제시한 풍경 속에 내가 온전히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생생하게 사로잡혔다.

글과 문학과 풍경을 통해 살아나는 기억.

외부와 단절된 채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며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이국의 오두막. 이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오직 읽기와 쓰기, 풍성한 사유만이 존재한다. 

그 장면에 기대어 나는 나의 고단한 마음을 뉘었다. 

차가운 눈 속을 고요히 걸어가는 나, 내 눈앞에 안개가 뿌연데 무릎이 잠기는 뿌연 안갯속 흐릿해진 시야와 볼에 닿는 서늘한 감촉, 그러나 깨끗한 공기.

이 산책의 끝에 무엇이 나와 마주할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걸었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정할 뿐 불안하진 않았다. 안갯속에 있는 건 늘 불안정하지만, 안개를 통과한 사람이 안개 뒤를 또한 견뎌내지 못할까.

서늘하고도 안락한 오두막에서 읽고 쓰고 사유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녀. 그녀가 제시한 풍경을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히 충만했다. 

그녀는 말한다.

'상실을 겪거나 배반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수치스러울 때면 나는 책상으로 가서 읽거나 쓰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삶을 바꾸고 싶을 때, 다른 삶을 간절히  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언젠가, 한 시간쯤 뒤에 혹은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반드시 다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나는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섬을 갖는다. 하나의 오두막을, 하나의 창문을 갖는다(p.110).'

나 역시 상실을 겪거나 배반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수치스러울 때면 나의 오두막으로 가서 읽거나 쓰면서 마음을 달랠 것이다. 서늘하고 고독한 안개를 우직하게 걸어갈 것이다.

다시 칸쿤의 바다. 내 기도의 대상은 여전히 안전이 필요하고 매일 아침 눈을 뜨거나, 하루를 마치고 잠이 들 때면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다시 광야로, 파도 속으로, 서늘한 안개와 고독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빛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섬을 갖는다. 하나의 오두막을, 하나의 정원을 갖는다.'

기도하는 일과 읽고 쓰는 일이 나를 보호할 것이다.

나는 평화롭다(I am at peace).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문학동네,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