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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May 04. 2023

예술과의 대화

소마 미술관 <다시 보다 한국 근현대미술전>

첫 직장을 다닐 때 올림픽 공원 근처에 살았다.

내 첫 직장은 굉장히 냉정한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3년 반을 버텼다. 당시 매일 밤 공원을 걸으며 힘든 마음을 달랬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도 업무능력도 무럭무럭 자라며 제 힘으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어른이 되어갔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친애하는 벗 D와의 시간, 그리고 올림픽 공원을 걸으며 쌓았던 퇴근 후 산책 루틴은 그 시절 나를 지켜주던 소중한 일들이었다.


그때의 직장 생활은 버겁고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단련된 덕분에 그다음 직장부터는 겁이 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 여린 부분이 있어도, 일적으로는 내 멘탈이 약한 편이 아니구나 돌아보게 되는 날이 많았으니까.


오랜만에 미팅 마치고 올림픽 공원에 왔다. 소마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을 보러.

나는 국내에서 열리는 근현대 미술전은 웬만하면 다 관람하는 편이다. 섹션 별로 말끔하게 떨어지는 기획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 시대의 미술에 가지는 경외가 크기 때문이다.

레퍼런스가 별로 없던 시대, 어지럽고 불안정했던 시기에 예술에 헌신하며 자신의 화풍과 예술 세계를 개척해 간 선배님들의 삶을 깊이 존경한다.

생계가 불안정할 때 계속 자신의 작업을 이어간다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이 시기의 미술을 보면 늘 용기가 나고 마음이 충전된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계속하는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마음의 용기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가능성을 계속 다져가는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이제 안다.

내 고운 꿈을 놓지 않도록 현실의 나는 조금 더 강하고 영민해져야 한다는 것도.


'예술과의 대화' 요조는 《만지고 싶은 기분》에서 '내가 무너졌을 때 일으켜준 책과, 내가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게 도와준 음악'p.105이라고 표현한다.

나의 '예술과의 대화''를 생각한다.

'내가 마음을 다쳤을 때 이불처럼 덮어주던 음악'과 '다 울었으면 툭툭 털고 일어나 이제 할 일을 하자'라고 말해주던 그림들을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 일을 하자.

'계속하는 힘'을 키워나가기 위해선 생활비와 연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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