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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책장 Jun 28. 2023

나의 세상을 이제 너에게 보여줄게.

prologue

테오가 떠나고 세 번의 밤이 지나갔다. 테오의 장례를 치르고도 나는 쉬이 잠을 잘 수 없었다.  긴긴밤이 지나가고 아침, 내가 매일 걷는 호수에 테오를 뿌려주러 갔다. 

"보고 싶은 테오야, 이제 매일 만나자."

호수의 물은 파동이 적어 흘러가지 않고 테오의 뼛가루가 가라앉아버렸다. 하얀 가루 덩어리가 그대로 가라앉아서 물길을 만들어주려 나뭇가지를 주어와 휘저어보았다. 하지만 가루는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우리 아기, 너도 떠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가 보구나.'

한참을 바라보다 카페로 가서 테오에 대한 글을 썼다.


정기 검진일에 테오의 신장에 구멍이 났다는 선고를 들은 이틀 후 새벽에 테오는 하혈로 응급실을 가야 했다. 나는 그날이 테오의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다. 검진일의 선고로 이틀 동안 이미 많이 울었기 때문에 테오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자 되려 차분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난 이미 온전한 정신일 수 없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테오의 보호자로서 의젓하게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많이 다짐했었다. 

선생님은 테오가 가는 날이 오늘은 아닐 것 같다고 하셨고   나는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여 아기에게 지혈제를 맞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글을 썼다. 테오에 대해 일기를 쓰며 마음을 추슬렀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렇게 쓰면서 버텼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득해하고 싶은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필객의 붓처럼 넘치도록 흘러나오는 그 말들에 나는 많이 울고 조금 위로도 받았다. 글이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그때 경험했다.

테오가 떠난 후에는 아침이면 일어나 호수로 가 테오에게 인사하고, 테오의 뼛가루가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고 매일 내가 공부하던 카페로 가서 같은 자리에 앉아 애도 일기를 썼다.

처음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기획을 했다. 사실 난 여러 권의 출간되지 않은 책을 썼다. 회사에서 기획자로 나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내 삶의 한 권의 책을 이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테오를 위한 애도의 시간을 책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간직하기 위해, 너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안녕? 나의 천사>는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헤어지는 안녕이 아닌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안녕?'. 그리고 나의 유일한 독자도, 이 책의 주인공도 테오였다. 나는 그 힘으로 일어났다. 별이 된 내 아이는 매일 내 기억과 글 속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나는 아이를 기록하며 비로소 나아갈 힘을 얻었다. 

1장은 아이와의 마지막 일주일을, 2장은 내가 만난 세상을 아이에게 말해주기로 했다. 


"테오야, 누나는 문학과 예술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나왔어. 언제나 그 배경엔 테오가 있었어. 많은 전시를 다녔던 날들, 전시를 돌아보며 카페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이제 집에 가자.' 일어설 때 누나의 "집에 가자." 속에는 언제나 테오가 있었어. 그래서 누나는 "집에 가자"라는 말이 너무 좋았어. 누나에게 집은 테오였거든.

누나는 넓은 세상을 항해했지만 넌 항상 집에서 그런 누나를 기다렸지. 이제 누나가 보는 세상을 너에게 말해줄게. 하나님이 기획한 누나의 타임라인에서 누나에게 지난 5년은 열매를 맺는 시간이 아닌 '버티는 힘'을 기르는 학교였더라. 그래서 너를 내게 보내주셨어. 아주 어둡고 막막한 5년이 되겠지만, 한쪽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빛이 내내 나를 지켜줄 거라고. 그렇게 너를 통해 누나는 5년의 '버티는 학교'를 잘 졸업할 수 있었어. 거기에서 누나는 마음이 강해졌고, 세상의 쓰임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렀고, 기약 없이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배웠어. 이제 다시 세상에 나가야 하기에 하나님은 너를 데려가셨어. '버티는 학교'의 졸업이 다가왔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론 더 이상 버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5년의 시간 그 토대를 만들어 갈 때 나의 빛, 나의 포근한 집이 돼줘서 고마워. 나의 세상을 이제 너에게 말해줄게. 누나의 이야기 속에서 넓은 세상 속을 멀리멀리 여행하렴."



아이를 뿌려준 호수. 분홍색 석양이 참 예뻤다.


하얀 뼛가루가 흘러가지 않고 가라앉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확인하러 갔다. 조금씩 흘러갔음을 알 수 있다.



지난 저녁 찾아갔을 때 남은 건 하얀 점 두개. 밤에 비가 오면 흘러가겠구나.




밤새 비가 내렸다. 아침에 가보니 테오의 흔적은 이제 없었다. 멀리멀리 흘러가렴, 나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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