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년을 되돌아보며
“이번엔 뭐를 입지?”
해마다 꽃 피는 3월이면 엄마들도 더없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공개수업과 학부모총회가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 기를 안 죽이기 위해서 뭘 입을지, 뭐를 신을지, 뭐를 들고 갈지 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난 한 해, 한 해 변하는 아이의 모습과 더불어 함께 성장해 온 내 자신 또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총회 때마다 신던 하이힐이 1센티미터씩 높아질 때마다 덩달아 나도 그 이상으로 자랐을까? 유치원 추첨 당일 떨리는 손으로 공을 잡았을 때가 엊그제 같고, 1학년 입학식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선생님의 지도를 따라 함께 걸어가던 뒷모습이 선한데 벌써 6학년이라니! 빠르게 전력 질주하는 세월을 붙들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품 안의 아이는 어느새 고속열차를 타고 마지막 플랫폼에 다다른 것이다.
돌아보면 사실 난 아이보단 성장이 더뎠던 것 같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생을 거치면서 아이의 신발 사이즈가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문득 느꼈던 날, 아이를 통해 나를 보게 되었다. 내 어릴 적 삶을 되풀이 복습하는 것 같은 느낌과 보호자로서의 뒤늦은 깨달음까지, 그래서 내겐 육아가 단순히 아이를 기른다는 개념을 넘어, 적어도 하이힐 굽 높이 이상으로 아이와 키 높이를 맞추기 위해 함께 자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보통 여자의 인생이 결혼을 전후로 달라진다고들 하는데 나는 이와 좀 생각이 다르다. 난 아이를 낳기 전후로 삶도 신념도, 생각도, 세상을 보는 시야도 확실히 달라졌다고 본다. 아가씨였을 때와 엄마일 때 각각 세계관의 프리즘 사이즈로만 봐도 그 간극 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길에 혼자 걸어가는 아이들만 봐도 미혼일 땐 관심이 별로였던 내 시선은 어느새 달라져 모두가 내 아이로 보이기 시작했는가 하면,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엄마로서의 감정들도 자리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여섯 살 즈음에 난 현관에 있던 엄마의 구두를 너무너무 신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가 일터에 나가신 틈을 놓치지 않고 큼지막한 구두도 신어보고 조막 막 한 입술에 립스틱도 발라보고 분도 볼에 톡톡 두드려 보면서 잠시나마 멋지고 특별한 어른이 된 양 가슴이 알 수 없는 몽글거림으로 신났던 때가 많았다. 특히 구두 위에 올라섰을 땐 갑자기 훌쩍 자란 듯한 기분이 쑥쑥 커져가는 매력이 있었다.
“이 신발이 너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라!”
사람들은 신발을 선물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정말 그랬다. 난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리도 원하던 구두와 함께 하는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 낮은 굽부터 킬힐까지 점점 높아져 가는 구두와 함께 느낌도 한결 달라져왔다. 어릴 적 몰래 신었던 구두가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설렘의 비밀이었다면 대학생 때의 구두는 내 자존심이었고, 사회에서의 구두는 내 일을 잘 풀리게 해주는 열쇠였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 신는 구두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얹어 놓은 오브제로 보인다.
사실 여자들이 신는 굽이 있는 구두, 하이힐의 역사는 기원전 3500년경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함의 극치인 바로크양식의 정점인 베르사유궁을 떠올리며, 화장실이 없어서 노상방뇨를 하던 그 시대의 상황에 맞게 고안된 하이힐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은 고위층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치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위계급사람들보다 더 커 보이려는 것에 목적이 있었고, 이후 그리스 로마제국을 통해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간 패션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아들은 오늘도 말한다. 구두를 신으면 엄마가 예쁘다고. 내 어릴 적 엄마를 바라보던 내 눈처럼 내 열두 살 아이 눈에도 구두 신은 엄마가 운동화 신은 엄마보다 더 예뻐 보이는가 보다. 이탈리아 구두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성장의 단계처럼 느껴지는 각기 다른 예쁜 구두를 신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면 각자의 상황과 각자 주어진 다른 환경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양육하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구두는 그래서 엄마인 자신을 비워내고 참아내며 거기에 애정을 쌓고 다듬어가는 예술작품처럼 보일 때가 많다.
스무 살 안팎 처음 하이힐 위에 올라섰던 순간이 생각난다. 작은 키가 얼마쯤 커졌다는 정도로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던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이집트시대의 고위층이 되었다기보다는 매가 돋보여 보이는 건 물론이고 윗 공기가 다르다는, 뭔가 한층 높아진 자신감이 수직으로 뻗어가는 듯한 희한한 느낌! 그래서 점점 높은 굽을 신으려고 애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부터는 평소 구두를 잘 신지 않는다. 오랜만에 학부모 모임이 있어서 대학원 다닐 때 신었던 10센티미터 구두를 꺼내 신었다가 바로 내려왔다.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높은 구두가 굉장한 부담과 피곤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신에 난 플랫한 구두나 운동화를 주로 신는다.
젊은 시절에는 발이 아프든 뭐든 간에 그냥 신고 나갔을 테지만, 이제는 안다. 그 구두의 높이가 자존심이나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보이는 것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하이힐에서 내려와 아이와, 그리고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나를 본다.
엄마라는 단어!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의 하이힐을 높이는 사람.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자 높은 굽에서 내려올 줄 아는 사람.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 꽃 피는 3월, 마지막 학부모 총회는 운동화를 신기로 말이다. 혹여 아이가 구두를 신으라고 하면 깨끼발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한테 하이힐은 너 하나면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