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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의미 Jul 10. 2019

소크라테스의 자살

악법도 법인가(feat. 『크리톤』)

어두운 새벽녘, 크리톤은 감옥을 찾는다. 탈옥을 권하며 소크라테스와 논쟁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오랜 친구는 독배를 택한다. 결과적으로, 반대하는 죽마고우와 싸워 제 죽음을 쟁취한 셈이다. 과연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여 죽음을 받아들였나 하는 의문과 동시에 자연스레 드러나는 민주적 절차는 우리의 눈길을 끈다.


플라톤이 쓴 이 책은 전혀 두껍지 않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희대의 문제를 낳게 된 과정이 짧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플라톤의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인 대화로 이루어져, 고루한 철학책 이미지와는 색다르다. 이성적이라 믿었던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면도 눈에 띈다. 꿈에 근거해 자신은 내일이 아닌 ‘셋째 날’에 죽는다고 단언하는 모습은 그저 신선하기만 하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대목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왜 자신의 독배를 건 투쟁에서 적극적으로 승리하려 할까? 죽으려고 환장했나.


크리톤은 친구를 지키지 않았다는 ‘평판’을 염려한다. 소크라테스는 ‘가장 좋은 것으로 보이는 원칙’을 제시한다. 둘 다 원칙에 합의한다. 일반인보다 전문가의 의견이 중하니 평판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의’가 쟁점이며,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 탈옥할 수도 없다. 이 과정에서 ‘법률’의 의인화가 나온다. 크리톤은 승복하며,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국가에 따라야 함에 동의한다. 의견을 내고 고민하며 설득, 소통, 합의하는 과정은 매우 민주적이지만, ‘국가 공동체’를 법과 동일시하는 점은 분명 시대의 한계를 드러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나라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크리톤의 마지막 발언은 매우 침착해 보인다. “소크라테스, 나는 할 말이 없다네.” 이 차분한 절제는 눈물을 삼키는 듯하다. 설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우정을 잃어야만 한다면, 과연 그 민주적 절차는 인간적인가? 정의의 원칙을 지키려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철학자의 자세는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사건은 차라리 자살에 가깝다. 이로써 그는 역사에 자리한다. 친구에겐 슬픔이나, 대국적인 성공이다. 사람들은 ‘산파’로서 평생토록 대중을 계몽한 그를 기린다. 이 헌신하는 철인을 기꺼이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리지 않았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저 원칙에 따라 크리톤을 설득했을 뿐. 원칙에 따른 결과는 독배였다. 원칙과 설득.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둘이다. 민중이 장사 지낸 민주주의가 다시 살아날 때 필수불가결한 제물이다. 이로써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지금, 우리는 그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크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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