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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womanB Jun 20. 2022

불편한 페미니즘

우리는 모두가 다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항상 이야기하고 싶지만 항상 두려운 주제가 페미니즘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혹시나 불편해하실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 나는 페미니즘을 대학교 현대미술 수업에서 접했고, 남들보다 일찍 그 이론을 접했기에 지금 떠도는 겉핥기식, 여자가 무조건 대우받아야지 하는 식의 억지 페미니즘이 아닌 진짜 페미니즘의 시작을 공부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나는 성 소수자들의 작품을 좋아했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 담아내는가, 어떻게 사회의 인식을 바꾸려 애쓰는가는 보수 기독교인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굉장한 충격과 반성으로 다가왔고, 이렇게 나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아픔과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들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역사적으로 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사회를 변화시켜왔다. 그런 작품들이 현재까지 남아 큰 가치를 누린다.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예술은 그저 그 시간에 갇혀 사라진다. 몇몇 연예인들의 취미가 그럴싸하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을 가치 있는 작품이라 볼 수는 없다. 물론 금전적으로만 작품을 평가한다면 값은 많이 쳐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행하고 있는 예술만이 지금 우리가 접하는 피카소처럼 끝까지 그 가치를 가져갈 것이다.


 페미니즘은 나에겐 성소수자들의 미술과 같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미술계에 진출하지 못하고 억압받던 여성 작가들이 미술사 속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알리고, 남성 작가들과 동등하게 실력으로만 평가받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신들이 존재함을 어떤 방식으로 소리쳐 알려왔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다만, 역사 속의 투쟁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역사 속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왔던 페미니즘은 내가 직장을 구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82년생 김지영처럼 저런 일을 다 겪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냐'라는 친한 남자 선배와 한 젊은 남자 정치인의 말을 들으면서 현재의 일로 다가왔다.

 어떻게 자신들과 함께 일하는 여자들의 삶에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불평등을 그저 표심으로만 활용하려 할까 라는 답답함에 나는 다시 페미니즘을 펼쳤고 미술사 속의 일이 아닌 전 사회의 일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들이 겪지 못한 삶이라고 아무도 겪지 않고 있는 삶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분야는 정말 다양하다. 남녀의 차이가 있는 어느 곳에나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남녀가 성적인 행위에서 어떻게 서로를 배려하는가부터 연애 구도가 어떠한가,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분담은, 시댁과 친정의 균형은 어떠한지,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남녀는 어떻게 다르게 일을 하고 대우받는가 등등 남녀가 함께 생활한다면 끝나지 않을 이야기이다.

  여자들이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생리대를 꺼내는 것이 페미니즘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남자가 차별을 받는 상황이 있을 수도, 여자가 차별을 받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때 남자이든 여자이든 자신의 행위와 위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때문에 나는 종종 '직장인은 페미니즘을 모를 수가 없다. 특히 직장인 여성은 페미니스트가 아닐 수 없다. 단지 본인들의 생활과 생각이 곧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는 이야기를 한다. 남녀의 차별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곳이 직장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느라 공백이 있어 취직도 늦고 취직을 해서도 남자라는 이유로 힘쓰는 일을 다 하는데, 여자는 여자라는 이유로 고된 일에서는 배제되고 생리휴가(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생리휴가는 무급이다. 일당은 반납하고서라도 쉬고 싶을 만큼 아프다면 결근 처리는 안 하겠다는 거다.)를 써서 맘 편히 쉬기까지 하니 얼마나 편하냐. 이미 대우해주고 있으니 적당히 좀 요구해라. vs 여자에게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가정에서의 압박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보고, 그렇게 여자들은 한 사람으로 성공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때문에 회사에서도 곧 떠날 존재라고 여기고 큰 사업이나 승진 등에서 늘 차선책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왜 그렇게 희생해야 하냐 그러니 너네는 이런 고통이 있는 우리를 배려해라.


 페미니즘이 목표하는 바는 이러한 서로가 겪는 불평등의 구조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불평등을 내버려 두는 사업주(국가)를 향해 함께 힘을 합쳐 소리쳐보자는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자와 여자의 실적이 같다. 하는 업무량도 같다. 하다못해 힘을 쓰는 일도 남자 1명이 할 일을 여자 2명이 조를 짜서라도 여자가 한다고 치자. 또한 남자도 커피를 타고, 탕비실 정리를 하는 등의 잡일을 한다고 하자. 그럼에도 남자는 220만원을 받고 여자는 180만원을 받고 있다. 이때, 여자는 요구한다. 같은 일을 하니 나는 남자와 동일한 임금을 받고 싶다. 남자여서, 여자여서 가 아닌 일 그 자체로 판단받고 싶다. 그때 사업주가 '그래, 앞으로 둘 다 220만원을 주겠다.'라고 하면 문제가 없다. 혹은 '그래도 남자는 군대 등 사회에 공헌을 해 왔으니 바로 임금을 맞춰줄 수는 없고, 그러한 공헌의 무게를 돈으로 환산해 그만큼이 채워질 때까지 (5~10년 정도) 여자가 조금 덜 받고 서서히 동일임금으로 맞춰주겠다'라고 해도 서로 인정할 수 있는 선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주가 '그래, 둘 다 같은 일을 하니 같은 임금을 받는 게 맞지, 근데 알다시피 나는 둘에게 다 220만원을 줄 돈이 없어. 남자도 여자도 평등해야 하니 둘 다 200만원을 줄게.'라고 말할 때 발생한다.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 여겨왔던 220만원이 갑자기 200만원이 되면, 남자는 억울하다. '저 여자가 사회에 진출을 하는 바람에 나의 임금에 문제가 생겼다. 예전엔 그냥 여자임에도 일자리를 갖는 것 하나로 감사하던 사람 아니었나. 왜 점점 요구하는 게 많아지지. 내가 여자라고 배려를 얼마나 많이 해줬는데!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나라를 위해 시간을 허비했고, 그 허비하는 시간 동안 저 여자는 공부를 하고 실력을 쌓아서 취직을 했으면, 그런 차이에 대한 보상을 내가 임금으로 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여자는 순식간에 곤란해진다. '내가 원한 것은 저 사람의 돈을 뺏어 나에게 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 나 역시 내가 하는 일만큼의 임금을 받고 싶다고 한 것인데, 왜 구도가 이렇게 흘러가지?'


 남자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만약 나에게 주어지는 식비가 월 20만원이었는데, 직원이 늘어 그 식비를 나눠야 한다고 하면, 사업주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직원을 들였나, 제정신인가, 이에 대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단 말인가! 하며 나의 것을 강탈당한 기분일 것이다. 동시에 여자들의 마음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나는 이전의 여성상 대로 5년 정도 일하다 취집을 해서 가정주부를 하는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사회에서의 나를 끝까지 지킬 것이고, 필요하다면 육아휴직도 포기할 것이다. 지금도 밤샘 업무가 있다면 남자들을 대신하여 하고있고, 주말에 차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딘가를 다녀오는 일도 맡아한다. 그럼에도 사업주는 암묵적으로 통상적으로 여자는 그럴 것이다 라는 인식으로 나를 성장할 직원이 아닌 '애쓰는 여자'로만 여긴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여기서 눈치챘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 대상은, 서로가 아닌 사업주(국가)다. 이러한 불평등을 알면서도 나 몰라라 하고, 그냥 니들끼리 협의를 봐봐 하고 내버려 두는 국가가 문제지 남자가 자신의 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아서,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요구를 해서 문제인 것이 아니다. 국가는 자신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남녀 싸움으로 내버려 둔다. 해결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검토해야 하고, 많은 논쟁과 협의가 필요하며, 한마디로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저 남녀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싸우고 있는 이때가 국가는 맘 편히 있다가 적당히 표심만 건드려주면 되는 최적의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업주, 임원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한다. 평등하게 대우해줄지도 모른다는 미끼로 여자들을 일하게 하면서도, 그래 봐야 여자야 라는 인식을 심어 여자들을 세뇌시키면서 동시에 남자들을 안심시킨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헐뜯는 데 매진하기보다는 좀 더 냉정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이들의 속임수에 안주하지 말자. 함께 힘을 합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남자들은 이대로가 편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사회를 이루기 위해 숨어있던 여자들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함께 동참해달라. 여자들은 남자들의 동참을 원한다면 여자라는 이름 뒤에 숨어 편한 것만을 취하지 말자.'가 페미니즘의 진정한 방향성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싸움의 대상은 서로가 아닌 우리를 이렇게 싸우게 만들고 그 뒤에 숨어 이익만을 챙기는 국가, 사업주, 임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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