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직도 나는 생리대를 숨긴다.
"썅년의 미학(민서영 저, 위즈덤하우스, 2018)"이라는 책이 있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매우 사실적인 페미니즘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책의 내용 중 생리대에 관한 내용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어떠한 작은 차별과 편견도 예민하게 집어낼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내용 중 하나였다. 우리는 왜 생리대를 살 때 꼭 검은 비닐봉지로 감춰서 들고 나오는가. 삽화 속의 여자는 생리대를 사고 검은 비닐봉지를 재차 권하는 편의점 직원에게 되묻는다. "혹시 제가 지금 산 게 마약인가요?" 타인을 폐암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담배도 당당히 들고 나오는데, 왜 우리는 우리의 위생용품을 살 때 늘 감춰야만 했을까. 더러워서? 똥오줌을 받아내는 기저귀를 살 때 기저귀 자체가 더럽다고 느꼈던가? 수치스러워서? 내가 여자로 태어나 겪는 당연한 자연현상을 왜? 부끄러워서? 콧물이 나는 현상은 부끄럽지만, 그걸 닦기 위해 사는 휴지가 부끄럽진 않지 않나?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여자중학교에 대해 돌았던 괴담 중 하나는 '여중은 여자들밖에 없어서 생리대 있냐고 대놓고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괴담이라 할 거리도 아니지만, 그 당시의 우리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감추며 건네주는 물건이 생리대였으니까. 두루마리 휴지는 잘도 들고 다니면서 굳이 생리대는, 그 자체가 포장이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파우치를 따로 챙기고 그 안에 꼭꼭 숨겨서 다녀야만 했을까. 생리기간이라는 그 불편한 시기가 남학생들에게 어쩌다 공개되면, 돌아오는 것은 배려가 아닌 장난과 조롱이었다. 사실 배려는 바란 적도 없다. '그래서 예민한 거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핀잔이 어이가 없었고 서운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학생들이 유행어처럼 그런 장난을 던지는 건 누구에게 배운 것이었을까.
성인이 된 지금, 나는 파우치에 생리대를 잘 넣어 다님에도 그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을 가는 걸 본 한 남자선배는 "넌 그걸 그렇게 대놓고 들고 다니냐, 여자애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 며 나에게 핀잔을 줬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내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것이었을까. 처음엔 진화론적으로 이해해보려 했다. 생리기간은 여성이 약해지는 시기이니, 본능적으로 나의 약함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감추어오던 동물적 습관이 남아서 그런 게 아닐까. 저 수컷 무리들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지만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라면, 생리기간엔 그냥 두고 배란기에 달려들지 않았을까.
생리는, 물론 먼 미래에 어떤 획기적인 기술이 발달해서, 수정을 원할 때만 난자가 나오게 하는 기술로 여성이 생리와 피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이 기술도 생리가 부끄러운 것이어서가 아닌, 불편한 것이어서이므로, 더럽지도, 수치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다. 물론 우리가 나 똥 싸고 왔어 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지 않듯, 나 생리 중이야 라는 말을 당연히 하는 것이 어쩌면 교양 없는 날것의 대화일 수는 있다. 하지만 생리대를 당당히 사고, 당당히 들고 다니는 것이 교양 없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리대는 죄가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굳게 마음먹고 봉투 없이 들고 나온 생리대를, 마주 오는 남자직원이 보지 않도록 다시 감춘다.
얼마 전 남자친구가 생리가 어떤 느낌인지 묻기에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아래쪽 사랑니 뺏을 때, 피 뭉쳐서 나오는 거 삼켜야 하지? 그 뭉친 핏덩어리가 그거의 5배는 넘는 양으로 내 아래에서 계속 울컥울컥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돌아온 대답은 "아, 정말 여자들 불편하겠다."였다. 그리고 난 덧붙였다. "불편함만 있으면 다행인데, 한 달의 4분의 1을 요통과 복통과 두통이 함께한다고 생각해 봐. 약을 먹으면 나아지지만 매달 약을 사는 거도 지겨워." 이 말에 남자친구는 "참 힘들 것 같아. 가끔은 여자들이 불쌍하기도 해."라며 나의 말에 공감해 주었다. 내 남자친구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임이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남자가 더 힘드냐 여자가 더 힘드냐의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녀를 떠나 고통을 겪고 있는 어떠한 인간 부류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을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이상 죄인처럼 생리대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