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문제일까 시간의 문제일까
학기가 끝나간다. 이제 과제제출과 시험, 그리고 논문이 남아있을 뿐 수업은 없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온다. 나는 아직도 즉각적인 질의응답이 어렵다.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쓰겠고, 시험을 보라고 하면 보겠다. 내가 품은 의문을 가지고 교수와 오피스아워를 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그리고 세미나에서 나오는 즉각적으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은 아직도 어렵다. 저 사람의 말을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가도 자신이 없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듣기에 있어서는 그나마 영어를 바로 듣고 이해하긴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 답변 역시 바로 '영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로 사고한 뒤 다시 영어를 거친다. 이 과정이 빠르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늘 대화에 끼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사고' 자체를 영어로 하지 않는 한 이 장벽은 계속될 것 같다.
조별과제 최종 발표에서, 나는 내가 질의응답에 잘 참여하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발표를 맡았다. 하지만 다른 발표자들이 질의응답에도 잘 응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한 중국 친구가 열심히 준비해서 같이 질의응답을 하는 것을 보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내가 만약 조금의 시간을 더 투자해서, 조금 더 열심히 리서치를 하고 예상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했다면, 조금은 나았을까.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한들 예상과 다른 질문이 나온다면 결국 또 나는 답변을 하지 못할 테고, 더 큰 자괴감이 몰려왔을 텐데, 적당히 준비하고 적당히 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일까.
그래도 일상에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에 있어서는 많이 편안해진 것을 느낀다. 또한 내가 이러한 패배감으로 수업준비를 잘 안 해가는 것 치고는 또 잘 넘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마음먹고 열심히 한다면, 내년의 나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 있을까? 쉐도잉을 하고,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해보려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수업자료를 준비해 간다면? 근데 그 마음을 먹는다는 것이 참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열정도 사라진 느낌이다. 과도하게 쏟아부어 봐야 나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년 이맘때엔, 조금은 수월해지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영어를 잘한 들, 내가 돌아가서 할 일엔 영어를 쓸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고, 이 또한 참 문제다.
이번 학교는 다행히 조별과제가 거의 없었고, 평가에 들어가는 조별과제는 단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다음에 갈 UCL은 거의 모든 수업의 평가가 coursework이고, 그룹평가가 이루어진다. 한 중국 친구가 말하길, UCL엔 중국인이 워낙 많을 것이고, 수준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많을 것이기에, 그들이 영어를 포기하고 중국어로 대화하면 나는 결국 소외되어 많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영어도 문제인데 중국어도 문제라니. 벌써부터 두렵고, 학교를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UCL을 버리고 굳이 다른 학교를 가고 싶지는 않은 욕심이 남아있기에, 두렵지만 부딪혀보기로 하고 버티고 있지만 이것이 정말 UCL을 경험하고 싶어서인지, 혹은 그 귀찮은 학교 지원절차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인지, 이 또한 잘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들로 요즘 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학 시험결과(예비시험이지만)는 최고 수준인 Distintion이 나왔고, 우울함도 잠시, 난 '영어'만 아니면, '생각'도 '영어'로 하는 애들과 실시간으로 무언가를 겨뤄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솔직히 다른 건 문제 될 것 없이 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닐 텐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international 학생들 모아놓고, 실시간 질의응답을 평가에 넣는 건 너무 백인들 위주로 생각한 평가기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