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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asureADD Jul 25. 2021

우리는짜면 짜는데로 나오는참기름이 아니니까

‘완결만 잘 된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스페이스 오페라가 될 것’ 독자들은 늘 인생 만화 0순위라는 찬양 일색이었고, 심지어 다른 작가들도 꼬박꼬박 챙겨보는 압도적 대작이 될 웹툰이 연재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웹툰의 최종화 베스트 댓글은 간결하고 무정했다. ‘용두니미’ 용두사미 정도를 넘었음에 표하는 허탈감과 분노였다.

<누들누드>등의 양영순 작가(이하 양 작가)가 최소 10년 이상 구상하고 다듬어, 또 10년 정도 연재한 이 웹툰의 이름은 <덴마>다. 양 작가의 <덴마>는 작화와 서사, 연출과 유머까지 모든 능력치가 빠짐없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독자들의 충성도 역시 대단했다.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양 작가는 지각의 아이콘이었다. 웹툰은 보통 그 전날 23시 정도에 업로드되는데, 그는 12시간 정도 지각하는 게 기본이었다. 거의 모든 회차에 그랬다. 처음에 불평을 늘어놓던 독자들은 점차 덴마가 정시 업로드되면 그다음 날은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농담을 하다가 지구의 평화를 위해 덴마는 지각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착되고 결국은 지각 여부가 평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재도 업로드의 지각 여부는 작가의 성실성의 척도로 평점에 큰 영향을 끼친다.) 한편 작중에 ‘백경대’라는 무력집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호출이 되면 그 즉시 순간이동으로 호출 위치로 이동한다는 설정이 있는데, 불규칙한 만화 업데이트를 쫓아가고 싶던 어느 개발자는 이 스토리를 차용해 만화의 업로드를 알리는 어플을 개발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앱을 거의 아무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순전히 만화 하나의 업로드를 위해 출시된 이 어플은 <덴마> 독자들의 필수 어플이 되었고, 덴마 독자의 이름이 ‘덴경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유튜버나 아이돌 팬덤과 달리 웹툰 독자들의 애칭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상징적인 일화라 할 수 있다. (한참 이후에 네이버 웹툰은 자체적인 알람 기능을 탑재했다.)

내가 짜면 짜는 데로 나오는 참기름이냐고!

이랬던 덴마가 왜 용두사미식 결말을 맞이해야 했을까. ‘내가 짜면 짜는 데로 나오는 참기름이냐고!’ 작중 성과를 독촉받던 어느 등장인물의 대사다. 독자들은 ‘이거 본인 입으로는 못하니까 캐릭터 입을 빌려서 하는 말아니냐’라는 의혹을 던졌는데, 어쩌면 진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양 작가는 연재중 번아웃이 와서 연재를 중단한 적이 있다. 그것도 아무런 공지도 없는 1년간의 잠수 연재 중단이라는 새 역사를 쓰면서 말이다. 최근 생산성에 관한 책을 읽으며 그 구체적인 이유 중 하나를 어림짐작해볼 수 있었다. 양 작가가 가진 생산성 문제에 관해서 말이다. 앞서 말해두자면, 나는 양 작가의 업무환경도 모르고 성실성이나 일 머리 등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내릴 실력도 없다.(그게 있으면 내가 웹툰 작가 했지) 다만 좋은 통찰이라는 안경을 쓰고 사건을 관찰하며 교훈을 얻을 수는 있다. 생산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 마이클 하얏트 작가의 <초생산성>을 통해 살펴보자.

안타깝게도 그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한 노력을 보면 누구라도 놀랄 것이다. 양 작가는 종종 호텔에서 작업을 했다. 후배가 왜 비싼 돈을 주고 거기서 작업을 하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래야 돈 아까워서 작업을 하거든.’ 독서실이나 템플스테이 따위를 들고 오지 말라. 호텔이다 호텔. 흔히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가징 기본적으로 ‘환경 설정’류의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환경에 휩쓸리기 때문에 환경을 우선적으로 손 봐야 한다. 핸드폰을 포함한 방해 요소가 없고 낮은 수준의 소음이 있는 등의 집중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거기에 돈도 쓰면 본전은 건지려는 심리에 더 필사적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호텔을 가는 건 아마 일반인이 지구에서 해볼 만한 건 다했다고 봐야지 싶다. 여기까지 시도했음에도 실패했다면 양 작가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덴마 이전에도 작업이 힘에 부쳤던 양 작가는 덴마를 준비하며 더 획기적이고 근본적인 생산성 향상 솔루션을 준비했다. 바로 극도로 단순화된 그림체다. 위의 두 그림 사이엔 10년의 세월이 있다. before가 오른쪽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after가 오른쪽이다. 양 작가가 <덴마>에서 보여준 그림은 극도로 단순하여 철저히 필요한 것만 묘사하는 게 마치 동작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무술 고수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심지어 개성까지 강해 보통의 내공으로는 해볼 수 없는 시도였다. 그림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이고 스토리에 비중을 키우기 위한 적절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두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만화라는 상품은 기본적으로 엔터테인이다. 독자의 단순 시각적 즐거움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불호’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인 영업을 일삼던 덴경대들은 ‘그림 불호’라는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다.

시장의 냉대에 맞서야 하는 단순화된 그림이 정말로 최적의 솔루션 이었을까? 양 작가가 이런 솔루션들이 필요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 당연히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웹툰 작가란 마감일의 눈치를 보며 쫓기는 게 일상인 직업이다. 그래서 롱런하는 작가 들일수록 팀을 단단하게 조직하고 분업을 철저히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제는 이런 시스템을 일궈 기업형 스튜디오까지 빌드하는 게 작가들의 보편적인 로드맵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제는 애초에 철저히 분업이 이루어진 팀의 형태로 시작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전에는 보통 채색 담당 정도만 고용하는 소극적인 위임이나 스토리 작가와 그림작가가 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에 비하면 웹툰이 산업으로서 얼마나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러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까지 그림을 단순화한건 '더 많이 더 빨리'라는 잘못된 방법론에 의한 전략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양 작가 또한 마찬가지로 스토리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머지 작업을 위임해야 했다..라고 쉽게 말하는 건 사실 그에게 너무 잔인한 이야기이다. 현역 작가들 중에서도 양 작가만큼 잘 그리는 사람은 잘 없다. 그렇게 수십 년간 극도로 단련한 기술을 자신보다 더 못하는 사람에게 위임하라고 강요하는 건 비극적인 찬탈이다. 게다가 작화 붕괴 등의 예정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며, 고용과 경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학습이라는 허들까지 넘어야 한다.


한편, 신인 작가들의 인터뷰를 보면 ‘밥만 먹고 만화만 그렸다’는 식의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웹툰 작가들의 수입이 천이네 억이네 하는 사실과 별개로 직업과 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어려운 직업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유이다. <신과 함께>의 주호민 작가는 이런 현상을 유도하는 주간 연재 시스템에 대해 ‘창작자를 과도하게 쥐어짜는 시스템’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밥만 먹고 일만 하는 삶의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이는 명시적으로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개인 차야 있겠지만 4년 정도다. 골드만 삭스 출신의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알렉산드라 미셸 Alexandra Michel은 투자 은행가들을 대상으로 12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1주일은 168시간이고, 이들의 평균 110시간 정도 일을 한다. 7시간 정도 잔다고 하면 깨어있고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은 7일간 단 10시간이 체 안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이니 회사에서 지원하는 엄청난 복지 덕에 가사와 행정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면 된는 환경이었다.(좋은 건가?) 이런 물심양면에 힘입어 이들은 엄청난 생산성을 보인다. 성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4년 차를 기점으로 이들은 신체적, 정신적 이상을 겪기 시작한다. 만성 피로, 불면, 각종 통증, 자가면역 질환, 중독, 섭식 장애 등을 겪으며 결과적으로 판단력과 윤리적 감수성이 떨어졌다. 은행가들은 저성과 상태를 타파하기 여기서 위해 '더 많이 더 빨리' 전략을 취하는데 결과적으로 휴식은 줄고 일은 늘어나니 각종 쇠약 증세는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꼴이다. 양 작가가 잠수 연재 중단을 해버린 2014년 8월은 덴마가 연재된 지 4년 하고도 7개월이 지난 때였다. 단순히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저는 우리가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 일들만큼이나 자랑스럽습니다.
- 스티븐 잡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시도하는 가장 잘못된 솔루션이자 보편적 솔루션은 '더 많이 더 빨리' 전략이다. 일단 잠부터 줄이고 보는 식으로 없는 자리의 스케줄 표에 더 많은 할 일을 구겨 넣는다. 하지만 우리는 짜면 짜는 데로 나오는 참기름이 아니다. 시간은 고정적이지만, 에너지는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간과 정성을 투입하면 에너지는 고갈된다. 자가 착취는 용감하고 비장한 선택이 아닌 상황이 더 많다. 해야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면, 오히려 하나 둘 내려놓는게 단순히 일의 능률을 올리는 것보다 상위 단계이고 우선적인 문제이다. 내가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즉, 포기할 일과 타인에게 위임하고 고용하여 해결할 일을 구분해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구분해내기 위한 좋은 도구를 소개하고 싶다.

생산성의 관점에서 일은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4번 영역의 잘하지도 않고, 잘할 생각도 없는 '고역 영역'의 일은 최대한 빨리 외주화를 진행해야 하는 영역의 일이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일을 모두가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다. 또한 자본주라는 게임에서 교환이 일어나고 시스템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3번 영역의 잘하지만 딱히 열의는 없는 일인 '무관심 영역'의 일은 대부분 돈 때문에 그냥 타성에 젖어하는 일인 경우다. 이 영역에 멈춰서 살던 데로 살다 보면 이 영역에 갇혀 수십 년 갇히게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열정은 충만하지만 능숙하게 해낼 능력은 없는 '산만 영역'의 일들이 있다. 에너지 소모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생계에 지장도 생길 수도 있고, 엄청난 시간 낭비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함정이 있다. 냉정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냉혹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잘하는 데다 재미도 있는 '갈망 영역'의 일이 있다. 갈망 영역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몰입하는 인생과 재정적인 부분까지 모두 해결해주니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성공의 열쇠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는 'x영역'이 있다. 배고팠던 예술가들이 내가 하는 일은 산만 영역에 있으니 돈 벌러 가야겠다며 포기했다면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무관심 영역의 일이 할수록 재미가 붙고 열정이 생겨 갈망 영역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일이든 상황과 맥락에 따라 x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주간 연재’라는 한계상황은 철저한 분업과 위임을 통한 팀 단위의 창작 시스템이라는 진정한 생산성 솔루션을 탄생시켰다. 그럼 이 시스템에 의해 만화 창작 업무들을 세분화해서 이 표 안에 정리를 해보자. 우선 그림과 스토리 두 가지 분류가 있고 그림은 또 콘티(구도 연출) - 메인 작화(세부 묘사) - 배경 - 컬러 - PD(말풍선+대사)로, 스토리는 세계관 - 메인 스토리 - 스크립트로 분리해봤다. 앞서 양 작가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난 양 작가에게 그림보다는 스토리가 좀 더 갈망 영역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회화나 일러스트가 아닌 만화에서 만큼은 그림은 예술적 표현보다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도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은 독자를 울리고 싶을 때 울리고, 웃게 할 때 웃기게 하는 맥락의 전달을 위한 도구로서 극단적으로 단련한 게 그림이 아닐까? 이게 사실이라면 그림 실력에 대한 집착은 사실 잘못 포착한 갈망 영역을 채우려는 아집이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양 작가는 메인 스토리와 콘티, 아주 중요한 장면에 한해서만 메인 작화 작업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관심과 산만 영역으로 밀어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갈망 영역에 좀 더 집중하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생산성의 진정한 정의는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네티즌 덕담처럼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얻는 것'이다. 호텔같은델 가면 자신을 착취하기 보단 일 다 끝내고 소중한 사람들과 여유를 만끽하는게 더 행복한 삶이 아닌가.


끝으로 양영순 작가님의 차기작은 완벽한 서사와 완결로 독자와 본인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작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길 바라보며


마침.



참고

책 <초생산성> 마이클 하얏트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731462

웹툰 <덴마>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119874

나무위키 '덴마' https://namu.wiki/w/%EB%8D%B4%EB%A7%88

나무위키 '양영순' https://namu.wiki/w/%EC%96%91%EC%98%81%EC%88%9C

기사 '이름 없는 문하생은 옛말… 채색만 잘해도 K웹툰 작가'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2021/02/05/OYHFL5QJMNETFEMMBJCYIQBF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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