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가 바둑이라면 글쓰기는 치사하게 나만 시간 무제한 룰을 적용받는 대국이다. 토론 중에 내가 말문이 막힌다고 정지! 를 외친 후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상대의 논리를 해부하고 반박에 필요한 근거를 순탄하게 나열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글쓰기에서는 가능하다.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을 논리 정연하고 정교하게 설계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 게다가 오픈북이다. 작년에 읽은 책, 각종 위키, 기사, 논문 무엇이든 내 주장을 충성스럽게 뒷받침하도록 지시할 수 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박을 우아한 동작으로 피할 수도 있다. 이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이 올라간다.
글쓰기 훈련은 중요하다! 그렇지. 맞지. 아-암!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하지?
우리가 주입식 암기훈련에 절여진 인재들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아니까 잊어버리자. 피해의식은 훈련 중인 몸에 무게추를 얹고 또 얹을 뿐이다. 물론 중량운동을 통한 근육량 증가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힘만 더 들 거다. 그냥 생각을 비우고 뱉어보자! 윌 스미스의 아들과 달리 우리는 ‘비공개’라는 기능으로 은밀하게 멍청할 방법이 있다! 그러나 많은 분들에게 ‘글쓰기’도 먼 나라 얘기인데 여기에 ‘훈련’을 접합하면 위치감각들이 상실되며 대략 멍해지실 것 같다. 기억할 것은 ‘작은 단위의 2차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는 것이다.
흑요석님은 해외 캐릭터와 한국적인 소품을 특유의 동양화풍 그림체로 재해석 및 재조립하여 유니크한 작품을 그려내는 작가이다. 위 작품을 통해 2차 창작물을 직접적인 메타포로 설명할 수 있다. 외국의 캐릭터인 심슨은 새로 알게 된 지식, 흡수하고 싶은 지식이다. 책, 유튜브, 팟캐스트, 공영방송 등 매체는 상관없다. 한복, 약과, 삿갓(을 통해 은밀히 보이는 대머리)과 같은 소품은 내가 알던 지식이나 경험이다. 꼭 대단한 경험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작고 귀여운 경험이 더 큰 공감을 살 수도 있다. 꼭 현업 10년 차 전문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심리학자가 볼 때 흔한 일이 물리학자가 봤을 때 특별할 수 있다. 굵고 진한 붓선 같은 동양화적 그림체는 창작자의 고유한 표현방식이다. 이는 당신의 사고방식, 태도와 기분상태 등 말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글쓰기가 처음이라면 유려한 필체 같은 걸 목표로 하지 말자. 초등학생처럼 그림을 완성만 해도 나는 칭찬을 해줄 것이다!
‘뇌가소성’이라는 이론을 설명하는 예제를 지으며 마무리하겠다.
[새로운 지식]
근육은 운동을 통한 자극에 의해 울퉁불퉁 발달할 수 있다. 매우 상식적인 문장으로 반론은 없을 것이다. 그럼 뇌도 외부 자극에 의해 발달할 수 있을까? 뇌와 근육은 분명 다르지만 같은 메커니즘으로 발달할 수 있다. 넌센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이는 런던의 택시기사들을 연구하며 증명되었다. 런던의 택시면허는 엄청난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 이유는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솔직히 대단하지만 멋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신도시와 달리 무계획으로 확장된 거미줄 같은 도로를 모두 암기하는 건 기본이고 길거리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면 거기가 어딘지 맞혀야 하는 수준의 문제가 등장한다. 전설의 고향에 가달라고 하면 예술의 전당에 바래다주는 k-기사님도 화들짝 놀랄 수준 아닌가!
기사지망생들은 시험을 최소 3년 정도는 준비한다고 하는데, 택시기사를 처음 준비하던 사람의 뇌 사진과 택시 면허 취득에 성공한 사람, 포기한 사람들의 뇌 사진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결과 뇌에는 정말 큰 변화가 생겼다. 길을 암기하는 뇌 부위를 해마라고 하는데, 이 면허취득에 성공한 사람은 해마 부위가 커졌다.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기사들의 뇌가 물리적으로 근육처럼 거대해진 것이다.
[내 경험과 생각]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몇 년 전에 게임 3D 모델링을 공부했는데 초반에 정말 미쳐버릴 뻔했던 기억이 있다. 게임 모델러는 명암이나 질감 등을 그려서 표현하는 섬세한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내 그림이 엉망이라는 걸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구린건 보인다. 그러나 손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눈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뭐가 어떻게 구린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드백과 연습을 통해 뭐가 구린건지 좋은 건지 익혀나가며 그 갭을 메울 수 있었다.
지나고 돌이켜보니 나는 색각인지 능력과 빛을 통해 형태를 읽어내는 능력이 부족했다. 컴퓨터로 치면 그래픽 카드가 문제였다. 그래픽 카드는 오래 쓰면 버려야 하는데 반해 뇌는 노력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하드웨어는 쓰면 닳지만, 신체는 쓸수록 강력해진다. 이보다 고통을 감내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