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이 되면 꼭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벽지의 패턴을 분석한다거나, 교과서 귀퉁이에 졸라맨으로 애니메이션을 그린다거나 하는 예술적인 행위도 있지만 단연 최고는 역시나 청소다. 평소엔 멍청이처럼 TV를 보거나 돌멩이처럼 누워만 있고 싶었는데 시험만 다가오면 어찌나 생산성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던지!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던 먼지를 툭툭 털다가 책꽂이의 흐트러진 오와 열이 눈에 거슬린다. ‘에잇! 쓸데없는 책은 왜 이리 많은 거야. 분리수거 시작이다!’ 그렇게 두세 시간 땀을 뻘뻘 흘리며 버리고 쓸고 닦다 지쳐 누워있으면 엄마의 시선이 의식된다. 오만가지 잔소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숨만 쉬고 가시네. 이거 다행인 건가?
유교 경전엔 이런 가르침이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뜻이다. 시험이라는 문제상황이 발생했다. 시험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험범위의 지식들을 충분히 암기하고 숙달해야 한다. 정석으로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나 복습을 생활화는 것이다. 공부를 라이프 스타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복습을 생활화하려면 적절한 학습환경이 갖춰 있어야 한다. 집에서의 학습환경은 정리정돈이 기본이다. 지금 보는 참고서와 공책이 그렇지 않은 것들과 구분되어 있어야 하고, 언제든 쾌적하게 꺼내 볼 수 있어야 한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학습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환경이면 된다.
청소를 시작한 아이는 시험이라는 압박에 의해 세상이 만드는 문제에 맞서기로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의 근원이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미약한 시도지만 아이는 지금까지 외면하던 가장 하찮은 문제부터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신제가의 가르침에 따르면 어쩌면 아이는 이 시작으로 인생의 문제들에 맞서기 시작해 복습을 생활화하고, 성적을 올려 좋은 대학에 가고, 어쩌면 위대한 인물이 될 징조를 보인 것이다. 생물의 ‘진화’란 외부압력에 의해 유전자를 바꾸는 현상을 말한다. 지금 청소를 시작한 아이는 시험이라는 외부 압박에 의해 스스로의 습관을 바꿈으로써 새로 태어나기 위해 움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inspired by <인생의 12가지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