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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하나님이 죽었으면 좋겠어.

by 하정

딸아이는 5살이다. 난 6개월부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매일 저녁 4권~10권 정도 책을 꼭 읽고 자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보니 5살이 된 현재, 또래 아이들보다 글자가 많은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물론 내가 읽어 주는 것이다. 아직 한글은 모른다.)


나는 크리스천이라 아이와 주일에 교회를 다니므로 자연스럽게 천국, 지옥, 죄, 심판, 예수님, 구원 등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게 된다. 어차피 주일학교에서도 배우는 내용이기도 하고.

몇 달 전 아이에게 집에 있는 어린이 전도용 책을 읽어 준 적이 있다. 줄거리는 고아인 홍콩 아이 떠리가 커다란 통에 살다가 우연히 교회에 가서 성경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떠리는 나중에 병에 걸려 죽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어주니 아이가 물어본다.

"엄마, 떠리는 천국 가?"

"그럼. 천국 가지. 교회 가고 예수님 믿었잖아."

"지옥은 안 가?"

"지옥은 죄지으면 가는 건데 예수님을 믿어서 안가. 우리는 다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갈 수 있는 거야."

"엄마. 우리 어제 소리 지르고 싸웠잖아. 죄 지었잖아. 예수님이 내 죄를 씻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

이러더니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한 나는

"하은아. 하은이는 교회 다니고 예수님 믿지?"

"응."

"그러면 천국 가니깐 걱정 안 해도 돼. 지옥 갈까 봐 걱정돼서 그래?"

그러니

"응" 이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이 대화를 마친 후 내적으로 고민이 생겼다. 크리스천으로 아이에게 성경을 알려주는 게 맞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천국, 지옥, 죄, 심판 등을 알려주는 게 맞는 건지 말이다. 아이한테 정서적으로 안 좋은 건 아닌지 고민이 됐다. 아이에게 말씀을 가르치는게 당연한 건데, 아이 엄마로서 아이가 지옥을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니 이기적인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명화로 읽는 성경동화 20권 세트를 구입했다. 아이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명화가 그려져 있어 내용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20권 책을 머리맡에 놓아주니 너무 좋아하며 원하는 책을 막 고른다.

"엄마 이거 읽어줘"

나는 기분이 좋아 신나게 읽어줬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시는 이야기, 요셉 이야기, 다윗 이야기 등.


난 아이가 성경동화 읽는 걸 좋아하니 여러모로 기분이 좋았다. 믿음의 아이로 잘 자라겠지?라는 기대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하나님을 죽일 수는 없어?"

'???????????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어린 아이니 내가 예상치 못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 티는 내지 못하고,

"그럼.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잖아. 신이니깐 죽일 수 없지. 왜? 하나님이 죽었으면 좋겠어?"

"응. 죽었으면 좋겠어"


순간 멘붕이 왔다. 아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성경을 알려주고 말씀대로 키우고 싶은 욕심으로 성경을 읽어줬는데 나온 말이 하나님을 죽이고 싶다니.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노아의 방주에서는 노아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홍수에 죽고, 롯 가족 이야기에서는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 사람들이 죽고 롯 부인은 소금기둥이 된다. 아이는 이런 이야기에서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존재,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로 생각한 듯하다.

이 일을 계기로 또다시 무수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5살 아이에게 성경동화를 읽어주는 게 맞는 것일까?'

'아이가 이렇게 질문할 때 어떻게 대답해 주는 게 좋은 것일까?' 등.


아이에게 성경을 읽어줄때도 지혜가 필요한 듯하다.

조만간 주일학교 전도사님에게 여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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