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4녀 1남인 우리를 키울 때 화를 낸 적이 없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8살 차이밖에 안나는 우리 남매는 소위 말해 피 터지게 싸우면서 컸다. 나는 성질만 더러웠지 그에 비해 체력이 안 따라 준건지 몸싸움을 못했지만 큰 언니는 첫째라 타고난 건지 배우지도 않았는데 권투선수처럼 싸움을 잘했다. 언니랑 몸싸움을 하면 난 1대도 못 때리고 언니한테 일방적으로 맞았다. 중학생 때쯤 큰언니와 한판 크게 싸우고 있는데 막내인 남동생이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중간에서 말린 적도 있다. 남동생과도 무수히 싸웠는데 싸우다가 유리창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이 정도로 말썽쟁이인 우리였지만 엄마는 타고난 성격인지 화를 낸 적이 없다. 우리가 너무 심하게 싸우면 밖에 나가서 개나리 가지를 꺾어와 울면서
"엄마가 속상해서 못 살겠어."라고 말하는 게 엄마가 화낸 전부다.
이에 반해 아빠는 우리를 혼냈지만 주로 성적 문제였고, 소리 지르고 베개를 던지는 정도. 물론 그것도 심하다면 심했지만 성품은 좋은 분이다.
이런 환경에서 큰지라 나는 나름 내가 육아를 하면 아이에게 화를 안 내고 키울 거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를 닮았나 보다. 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화가 날 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5세인 딸아이는 어느 날부터 내가 소리 지르며 화내면
"뿌잉"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긴 어른인 나도 누가 나한테 소리 지르면 기분 나쁘고 마음이 상하는데 아이야 당연한 거겠지. 아이가 울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시간에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화 안내는 여자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
이 말을 들은 나는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은아. 그러면 엄마는 누구랑 살아?"
그러니깐 아이는 답이 없다.
그러자 멀리서 듣고 있던 남편이 말한다.
"하은아. 엄마한테 화내지 말라고 하면 되지."
역시나 남의 편이라 그래도 남편뿐이 없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가급적 아이에게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하고 아이에게도 약속을 했다.
"하은아. 엄마가 화 안 내려고 노력할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상황이 되면 화를 내게 되고, 화는 아니지만 조금 큰 소리로 말하면 아이는 화를 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고 젤리, 과자, 사탕 등을 계속 먹는다고 해서 안된다고 말하다 보면 목소리가 또 올라간다.
"건강한 음식 안 먹고 그렇게 단 음식 많이 먹으면 키도 안 크고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그랬지."
단호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화를 낸다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 화 안내기로 했잖아."
"화낸 거 아니야. 좀 크게 말한 거지."
"엄마. 화내지 않고 말로 했으면 좋겠어."
"그래. 알았어. 엄마가 노력할게."
화내는 것도 습관인 건지 아이에게 이런 말을 자꾸 들으니 조심하게 되고, 전보다는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훈육이 필요하니 아이를 혼내는 건 맞는데 화를 안 내면서 훈육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집에 놀러 갔다. 그날 어린이집 같은 반 다른 남자아이까지 같이 가게 됐다. 친구가 남자아이라 집에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많았다. 같이 간 친구도 남자아이라 장난감을 보며 좋아서 이것저것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20분뿐이 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준아. 20분 있다가 집에 가야 해. 누나가 기다리고 있어서. 엄마가 알람 맞춰 놓을게."
"응"
그리고 20분 있다가 알람이 울렸다. 아이 엄마는
"준아. 알람 울렸다. 이제 집에 가자."
그러자 아이는 장난감이 많은 친구집이 너무 좋았는지 울면서 집에 가기를 거부했다.
나 같으면
"언니 기다리는데 집에 가야지. 엄마랑 약속했잖아!!!"
이런 식으로 약간 세게 말하면서 아이를 울렸을 텐데 이 엄마는 달랐다.
"준아. 여기서 더 놀고 싶구나. 그런데 누나가 기다리고 있어서 가야 돼. 엄마랑 아까 약속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계속 울었다. 그러자 아이 엄마는
"그럼 5분만 더 놀까?"
"응"
"그럼 엄마 5분 후 알람 맞춰 놓을게"
그러자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 뒤 알람이 울렸다.
"알람 울렸다. 준아. 이제 가자."
아이는 그러자 울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아이 엄마는 아이를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하은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준이 엄마는 화를 안 내더라. 왜 그런 거야?"
맨날 화내는 엄마랑 살아서 그런지 모든 엄마가 화를 낸다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모든 엄마는 아이한테 화를 안 낸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응. 그 엄마는 화를 안내는 성격인 거 같아."
그랬더니 아이가 그런다.
"나도 엄마가 화를 안 냈으면 좋겠어."
아이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 많이 부끄러웠다.
"알았어. 하은아. 엄마도 준이 엄마처럼 화 안 내도록 노력할게."
"응"
나도 정말 준이 엄마처럼 지혜롭게 화를 안 내고 아이를 훈육하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