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각한 길치다. 나는 보통 내 ‘길치력’을 두 문장으로 표현하는 편인데, 하나는 ‘낮에 보는 길과 밤에 보는 길이 다르게 보인다’이고 다른 하나는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다르게 보인다’이다. 실제로 나는 왔던 길을 잘 돌아가지 못한다.
그 정도면 일상생활이 힘든 수준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힘든 수준은 아니고 불가능한 수준이다. 단, 휴대폰이 없다면 말이다. 나는 나의 저주받은 방향 감각과 하찮은 공간 지각 능력을 극복하는 것은 일찍이 포기하고 그 대신에 각종 지도 앱을 활용하는 능력을 길렀다.
그럼, 데이터가 떨어지거나 배터리가 바닥이 나면 너는 미아가 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높은 확률로 미아보호소에서 발견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도 적지 않게 맞닥뜨리기 때문에(데이터나 배터리에 대한 상황을 말하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미아보호소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이건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갈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냥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에 무슨 방법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왔던 길과 돌아가는 길이 전혀 다른 길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방법을 찾기 전에, 내가 왔던 길과 돌아가는 길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해봤다.
그건 시선의 차이였다. 물론 일반인이라면 방향 감각과 몇 가지 지형지물로 길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나는 기억해놓은 장소에서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무작정 반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었다. 뒷걸음으로 있던 곳을 빠져나오면 내가 들어갈 때 봤던 시점으로 그 장소를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길을 잘 찾아낼 수 있었다. 길 한복판에서 문워크가 웬 말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 길치’의 절실함이 담긴 뒷걸음질을 실제로 보게 되면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있어 뒷걸음질은 ‘대상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다시 정의된다. 그런데 이런 정의를 곱씹어보고나면 어김없이 나는 ‘초심’에 대한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마음들을 뒤돌아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면 나에게 가끔은 뒷걸음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첫 마음을 갖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현실에서 그 마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길을 정신없이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그제야 길을 잃었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마음은 가지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삶은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들과 그 마음을 기억하는 ‘시간’들로 이루어진다. 순간들로 인해서 우리의 삶은 변화하지만, 그 변화하는 궤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시간들이기에 마음을 기억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는 것이 우려된다면 가끔 뒤돌아보는 정도도 괜찮을 것이다. 어느 곳으로부터 걸어 나왔는지를 잊지 않는 사람은 결국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