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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vhon Feb 14. 2023

자기 자신이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

김승옥 <무진기행>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을 때면, 나를 번번이 멈춰 세우는 장면이 있다. 음산한 안개가 깔린 무진으로부터 자신을 꺼내어 서울로 데려가 달라던 하인숙이 문득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말을 들은 윤희중은 ‘서로 거짓말은 하지 말’자고 말하고 하인숙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하인숙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의 근거는 하인숙이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 윤희중에게 던졌던 질문에 있다.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세요?”


 나에게 <무진기행>은 자괴감에 대한 이야기이다. 윤희중은 과거의 자신이 자괴감을 느끼던 공간인 무진으로 내려가서 하인숙을 만나는데, 그는 하인숙이 부르는 노래에 ‘시체가 썩어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미어있음을 느낀다. 윤희중은 그런 하인숙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하고 하인숙은 자신을 서울로 데려갈 수 있는 윤희중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감정이 조바심에 이르렀을 때, 하인숙은 앞서 얘기했던 질문을 던진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나는 하인숙이 진실을 이야기했다고 믿는다. 그 진실은 하인숙이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며,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그녀가 ‘무진에 남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인숙은 왜 무진에 남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무진이 그녀의 비틀어진(이 때문에 그녀 자신조차도 싫어하는) 내면과 닮아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안개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그 안에 광기와 냉소, 죽음을 감추고 있는 무진이라는 고을은 어떠한 인간의 내면세계처럼 보인다. 그 내면세계는 김승옥의 <생명연습>에서의 ‘자기세계’와 같이 곰팡내가 진동하는 곳이기에, 내면에 감춰놓은 그 추(醜)의 세계를 기꺼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들여다본 것을 바깥으로 가져와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다.

 다시 <무진기행>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인숙과 윤희중은 각자의 무진을 내면에 품고 있는 존재들이며 그들은 그 이유 때문에 공명한다. 그리고 작품이 결말 부에 이르러서 윤희중에게는 그 공명으로부터 더 나아갈지, 아니면 원래의 세계로 회귀할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결국 서울로의 귀환을 선택한 윤희중은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팻말을 지나치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이 대목에 대해서 윤희중은 결국 ‘자기 자신이 싫어지는 것’을 껴안는 데에 실패한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남자에게 정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실패의 과정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나 또한 내 안의 자괴감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과거에 내 안의 무진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의미 없는 시간으로 밤을 깎아내리며 다음 날을 망가뜨려 가는 날들이 이어졌다. 다음 날의 나는 그다음 날을 망가뜨렸고, 그다음 날의 나는 다시 그다음 날의 다음 날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그 악순환이 끝단에 다다랐을 때, 나는 문득 거울 속의 내 얼굴이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윽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 얼굴이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그가 어디까지 추한 존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가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때에 그 존재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이다. 정확히 얘기해서, 나 자신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들여다본 자만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자괴’를 거치지 않은 ‘자애’는 없다.


스스로를 끝까지 싫어해 본 사람만이 스스로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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