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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ivhon Mar 19. 2023

나의 조촐한 사진학개론

 나에게는 카메라가 세 대 있다. 하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근 마켓에서 샀던 캐논의 DSLR이고, 다른 하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동묘 시장에서 샀던 야시카의 필름카메라다. 그리고 이 두 카메라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는 데 쓰이는 아이폰 13이 있다.

 내가 아이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따금 DSLR과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사진의 형식을 더 다양하게 하고 싶어서이다. DSLR은 다른 카메라들에 비해서 더 내 눈과 비슷한 사진들을 찍어내고 필름카메라는 빛을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담아낸다(이는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진의 형식을 내용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나에게는 ‘어떻게’ 찍는지보다 ‘무엇을’ 찍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사진은 과거를 반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사진을 꺼내어볼 때마다 그 사진 속의 순간들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반복은 나에게 꽤나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만일 우리가 생을 마치고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면, 그리고 태어난 이후 전생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된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게 된다면 어떨까. 언뜻 보기에는 똑같은 삶이 무한루프를 반복한다는 재미없는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그 반복은 영원한 것이고, 그 때문에 삶 속의 순간들도 영원하다.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도 영원이 된다. 지나갈 순간이 영원이 된다면 우리는 이 삶에 대해 더한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과거 한 철학자가 던진 이 질문이 처음에는 나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똑같은 삶이 반복된다는 이야기가 나의 실제 삶에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질문이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와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진은 과거를 반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건 곧 내가 셔터를 누를 때마다 필름에 고정되는 순간들이 내가 미래에 다시 돌아올 지점이 된다는 걸 말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뒤로 나에게 사진은 ‘미래에서 되돌아볼 과거를 위해 현재를 남기는 과정’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사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서랍의 바닥에서 발견한 핸드크림의 냄새, 라디오에서 우연히 듣게 된 옛 노래와 같은 것들은 기억 한 켠으로 나를 끌고 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멱살을 잡힌 것처럼 끌려갈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나는 지금 이 순간으로도 끌려올 것이다.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닐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속절없이 끌려올 이 현재를 ‘그래도 한번쯤 되돌아올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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