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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라 Feb 19. 2024

둑을 쌓을까 익사할까?

상상농담 40. 휴 골드윈 리비에르 <에덴동산>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이정하 <낮은 곳으로>

   

휴 골드윈 리비에르 <에덴동산, 1901>


  봄을 깨우는 빗소리일까요? 비가 도로 위를 데구루루 구릅니다. 구르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스며듭니다. '에고 깜짝이야'하는 움츠린 흙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모든 것이 기지개를 켤 시간, 사랑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입니다. 내 안에 움츠린 깊고 낮은 곳에 있던 사랑이 '에고 깜짝이야' 놀랍니다. 이정하 님의 시처럼 '잠겨 죽어도 좋으니 물처럼 내게 밀려오는 너'가 기다려지는 아침입니다. 


  아침에 만나는 공원엔 두 연인이 길을 걷고 있네요. 아아~ 척 보아도 알겠지요. 둘은 사랑하고 있습니다. 볼러(Bowler)를 쓴 신사의 옆모습엔 표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을 사랑해요'라고요. 어찌 아느냐고요? 마주 보는 여인의 눈망울에 가득한 설렘과 행복이 대신 말하고 있습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라고요. 


  리비에르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을 절묘하게 담아내었습니다. 꽉 쥐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손, 내디딜 듯 멈출 듯하는 걸음, 몸을 완전히 마주하지도 그렇다고 나란히 앞을 보지도 않는 어깨, 그리하여 아직은 약속된 미래에 다다르지 못한 썸남썸녀의 아슬아슬한 긴장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려냈습니다. 여인의 수줍고도 애틋한 눈빛은 우리가 한 번은 가져보았던, 이제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언어인가요? 




  안개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저 마차의 소란과 일상의 구질구질함에서 연인들을 보호합니다. 리비에르는 차갑고 쓸쓸한 회색과 파란색의 겨울 색조가 어떻게 도시 속에 스며들 수 있는지, 겨울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흥분을 가득 머금은 빗방울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찰나, 신사의 우산이 펼쳐지겠지요. 함께하는 내일은 비 오는 우산 속입니다. 화가가 작품은 완성한 얼마 후, 둘은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의 처제인 베아트리체와 약혼자인 건축가 퍼시라지요.


  올봄엔 홍수처럼 사랑이 밀려들 것입니다. 둑을 쌓을지 익사할지를 선택해 볼까요?


PS : Carpenters의 'Close to you' 들으시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


*유튜버 럽티의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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